자유게시판 - 누구나 자유롭게 글을 올릴 수 있습니다.

글 수 4,852




행여 지리산에 오시려거든 / 이원규


행여 지리산에 오시려거든
천왕봉 일출을 보러 오시라
삼 대째 내리 적선한 사람만 볼 수 있으니
아무나 오시지 마시고

노고단 구름바다에 빠지려면
원추리 꽃 무리에 흑심을 품지 않는
이슬의 눈으로 오시라

행여 반야봉 저녁노을을 품으려면
여인의 둔부를 스치는 유장한 바람으로 오고
피아골의 단풍을 만나려면
먼저 온 몸이 달아오른 절정으로 오시라

불일폭포의 물 방망이를 맞으려면
벌 받은 아이처럼 등짝 시퍼렇게 오고
벽소령 눈 시린 달빛을 받으려면
뼈마저 부스러지는 회한으로 오시라

그래도 지리산에 오시려거든
세석평전의 철쭉꽃 길을 따라
온몸 불사르는 혁명의 이름으로 오시라

최후의 처녀림 칠선계곡에는
아무 죄도 없는 나무꾼으로만 오시라

진실로 지리산에 오시려거든
섬진강 푸른 산 그림자속으로
백사장의 모래알처럼
모레알처럼 겸허하게 오시라

연화봉의 벼랑과 고사목을 보려면
툭 하면 자살을 꿈꾸는 임아
반성하러 오시라

그러나 굳이 지리산에 오고 싶다면
언제 어느 곳이든 아무렇게나 오시라
그대는 나날이 변덕스럽지만
지리산은 변하면서도 언제나 첫 마음이니
행여 견딜만하다면 제발 오지 마시라
댓글
2007.06.11 21:03:30 (*.202.152.247)
Ador
이 글을 대하는 순간 부터 마지막 연까지......
읽는 이로 하여금 이렇게 왜소하게, 초라하게 할 수가 있는지.....
댓글 쓰는 것 마저도 외람되게 하니요..... 무겁게 이고 갑니다. 올리신 수고에 감사하며...
댓글
2007.06.14 18:10:37 (*.204.44.7)
빈지게

Ador님!!
그래도 저는 ...
"그러나 굳이 지리산에 오고 싶다면
언제 어느 곳이든 아무렇게나 오시라"

그 대목이 제일 마음을 편하게 하는 것
같아서 좋아요.ㅎㅎ
언제나 즐거운 날 되시길 바랍니다.^^*
번호
제목
글쓴이
공지 우리 홈 게시판 사용 방법 file
오작교
2022-04-26 127457  
공지 테이블 매너, 어렵지 않아요 2 file
오작교
2014-12-04 139253  
공지 당국이 제시한 개인정보 유출 10가지 점검 사항 4 file
오작교
2014-01-22 156315  
공지 알아두면 유익한 생활 상식 7
오작교
2013-06-27 156901  
2532 아내의 생일 11
빈지게
2007-06-14 1437 10
2531 낙숫물 소리
부엉골
2007-06-14 1211 3
2530 * 나는, 비내리는 게 좋아간다 5
Ador
2007-06-13 1416 8
2529 사랑 1
김미생-써니-
2007-06-13 1538 4
2528 비가 내리면 누군가의 연인이 되고 싶다/이효녕 4
빈지게
2007-06-13 1353 7
2527 세월 3
부엉골
2007-06-13 1442 2
2526 밤꽃 4
부엉골
2007-06-12 1140 1
2525 바위를 뚫은 화살 3
휴게공간
2007-06-11 1245 3
2524 금산 계곡에서 5
우먼
2007-06-11 1231 6
2523 싸리꽃 3
부엉골
2007-06-10 1440 2
2522 오늘밤 찾아 와 주지 않으려오 1
바위와구름
2007-06-09 1187 6
2521 산비둘기 1
부엉골
2007-06-09 1215 3
행여 지리산에 오시려거든 / 이원규 2
빈지게
2007-06-08 1300 3
2519 살며 생각하며 3
은솔
2007-06-08 1158 1
2518 오신다네요 5
부엉골
2007-06-08 1112 1
2517 ♣ 당신을 가져 가겠습니다 ♣ 3
간이역
2007-06-07 1087 3
2516 * 유월의 하늘아 5
Ador
2007-06-07 1543 39
2515 지금 알고 있는 걸 그때도 알았더라면 7
빈지게
2007-06-07 1480 3
2514 보슬비 2
부엉골
2007-06-06 1380 2
2513 연/박철 3
빈지게
2007-06-05 1120 5

로그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