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게시판 - 누구나 자유롭게 글을 올릴 수 있습니다.

글 수 4,852
2008.03.06 10:19:04 (*.220.250.87)
1178
1 / 0




생은 길을 따라 이어지고...




나 여기 왔네 바람에 실려  
여름의 첫 날  
바람이 또 나를 데려가리  
가을의 마지막 날.

혼자 와서
혼자 마시고  
혼자 웃고  
혼자 울고  
혼자 떠나.

동도 아니고  
서도 아니고  
북도 아니고  
남도 아니고  
다만 내가 지금 서 있는 이 자리.



마른 꼴 비에 젖어
촉촉한 봄 냄새에
씰룩이는 젖소 코.

비포장도로의 아득한 끝은
구름 낀 하늘을 물고  
흙먼지 위에는
빗물 몇 방울.



늘 누군가와
약속을 한 듯하여라
오지 않을 사람과……
이름이 기억나지 않는 사람과.

벌써 몇 해째인가
계절 사이에
걸려 나부끼기를
지푸라기 한 올처럼.



외로운 첫 가을
달 없는 하늘
가슴엔
노래 백 가닥.

비는 먼 바다에 쏟아지고―
들은 바싹 타 들어가고.



논일하는 농부들 노래
기뻐도

슬퍼도
가락은 늘 하나.
내가 정말 믿는 것
밤도
낮도
끝이 있다는 것.



눈밭에
발가벗은 아이 천 명.
한겨울의 악몽.

바람이
울부짖고
이리가
울부짖고―
달은
숨었나
검은 구름 뒤로.



눈 덮인 벌판의
검은 두건 까마귀
자기를 보고 놀라다.

밤은
길고
낮은
길고
생은
짧아.



눈밭에 사람 발자국―
볼 일 보러 가셨나?
돌아올까?
이 길로?

눈 덮인
묘지에
눈 녹는
묘비 셋―
어린 죽음 셋.



생각할수록
도무지 모르겠어
죽음을 그리
두려워할 이유를.

눈 녹은 물에
저 건너 강 몸 뒤치는 소리
다시 들을 날 있을까.



어느새
인생 하나 지나와
나를 생각하며 우네.

나의 죄를 용서해 주기를
잊어 주기를―
그러나 내가 다 잊을 만큼
깨끗이는 말고.

사진,시 / 압바스 키아로스타미(영화감독)
번역 / 정영묵



* 오작교님에 의해서 게시물 이동되었습니다 (2008-03-07 07:44)
댓글
2008.03.07 07:43:31 (*.204.44.1)
오작교
마음이 푸근해지는 이미지와 함께
너무 좋은 글을 올려주셨습니다.
하루를 시작하는 아침에 이렇게 좋은 글과 이미지를 만나면
왠지 하루가 좋을 것 같은 느낌이 들거든요.
감사합니다.
아래의 "마음에 담고 싶은 글"과 함께 잘 간직하겠습니다.
댓글
2008.03.07 08:58:07 (*.248.186.52)
An
참 멋진 이미지를 봅니다.

늘..
길을 따라 사는 우리
내가 가고 있는 길에 대해
차분히 생각해 보게 되네요.

감사해용~ ㅎ
댓글
2008.03.07 12:17:23 (*.196.255.112)
새매기뜰
농부님 닉네임 다운 이미지 입니다
들녘속의 아름다운 풍경
평화를 빕니다
번호
제목
글쓴이
공지 우리 홈 게시판 사용 방법 file
오작교
132508   2022-04-26 2022-04-26 17:00
공지 테이블 매너, 어렵지 않아요 2 file
오작교
144274   2014-12-04 2021-02-04 13:44
공지 당국이 제시한 개인정보 유출 10가지 점검 사항 4 file
오작교
161396   2014-01-22 2021-02-04 13:58
공지 알아두면 유익한 생활 상식 7
오작교
162019   2013-06-27 2015-07-12 17:04
3112 포장마차 추억.. 11
데보라
1557 11 2008-03-09 2008-03-09 09:32
 
3111 섬진강 봄 풍경(3월 8일) 11 file
빈지게
1471 8 2008-03-09 2008-03-09 00:25
 
3110 쎈스있는 할아버지와 할머니의 대화~ 10
데보라
1356 7 2008-03-08 2008-03-08 00:43
 
3109 오늘/소순희 4
빈지게
1549 3 2008-03-07 2008-03-07 20:02
 
3108 돈버는 사람과 못버는 사람의 차이점 2
셀라비
1403 2 2008-03-07 2008-03-07 16:30
 
3107 시간의 가치! 2
새매기뜰
1452 1 2008-03-07 2008-03-07 16:44
 
3106 * 교통카드의 비밀, 마일지리-마이너스 제도 시행중입니다~ 2006.10. 시행 3
Ador
1168 5 2008-03-07 2008-03-07 12:23
 
3105 얼굴에 이렇게 깊은 뜻이 4
호리병
1481 3 2008-03-06 2008-03-06 23:31
 
3104 사람의 마음을 얻는 다는 것 3
호리병
1193 1 2008-03-06 2008-03-06 23:19
 
생은 길을 따라 이어지고... 3
농부
1178 1 2008-03-06 2008-03-06 10:19
생은 길을 따라 이어지고... 나 여기 왔네 바람에 실려 여름의 첫 날 바람이 또 나를 데려가리 가을의 마지막 날. 혼자 와서 혼자 마시고 혼자 웃고 혼자 울고 혼자 떠나. 동도 아니고 서도 아니고 북도 아니고 남도 아니고 다만 내가 지금 서 있는 이 자리. ...  
3102 마음에 담고 싶은 글 3
농부
1465 4 2008-03-06 2008-03-06 10:17
 
3101 * 인연으로 만난 우리 2
김성보
1406 6 2008-03-06 2008-03-06 23:47
 
3100 울며 헤진 부산항! 3
슬기난
1420 6 2008-03-06 2008-03-06 19:49
 
3099 봄의 초대/김양규 2
빈지게
1486 1 2008-03-06 2008-03-06 13:15
 
3098 건강미녀 집합 6
초코
1236 1 2008-03-05 2008-03-05 13:42
 
3097 엽기사진들 4
초코
1557 19 2008-03-05 2008-03-05 13:09
 
3096 인생의 30가지 진실! 2
새매기뜰
1183   2008-03-05 2008-03-05 09:50
 
3095 어느 이혼남의 '남편들이여...' 3
김일경
1148 6 2008-03-04 2008-03-04 23:33
 
3094 강가의 나무 - 박기동 / 촬영 - 윤민숙 3
Jango
1314 2 2008-03-04 2008-03-04 20:38
 
3093 ☆... 최고의 아카펠라^^* 8
데보라
1156 6 2008-03-04 2008-03-04 10:11
 

로그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