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똥이 형
오늘 나는 한 장의 청첩장을 받고, 그간 아득하게 잊혀졌던 추억이 떠올라 실소를 금할 수 없었다.
나를 웃게 만든 장본인은 개똥이 형이다.
호적상엔 평범한 이름이 올라가 있지만 왜 궂이 개똥이로 불려졌는가 하면, 옛날 시골에서는 영아 사망률이 높았기 때문에 어렸을 때 천박한 이름으로 불려야 오래 산다고 믿어서 3대독자 외아들을 위해 그런 지저분한 이름을 붙여 주었다고 한다.
그 형은 나보다 5살이 위였다.
개똥이는 그 당시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이웃의 금순이 누나하고 결혼을 했다.
우리 동네에서는 앞뒷집 처녀총각이 눈맞아서 하는 그런 결혼을 "강아지결혼"이라고 했다.
이유는 굳이 설명하지 않아도 개들의 번식 과정을 생각해 보면 뭐 대충 짐작이 갈 것이다.
금순이 누나는 동네에서 얼굴이 제일 예뻤기 때문에 누나를 연모하는 총각들이 줄을 섰었다.
그런데 그중에서도 제일 무녀리인 개똥이가 금순이 누나를 차지하게 된 이유가 뭔지 이해가 잘 안된다. 키는 150 조금 넘을까 말까하고 말주변도 별로 없고, 뭐 매력이라는게 눈꼽만치라도 있어야지.......
70년대 초반만 해도 시골에서 처녀총각이 연애를 하게 되면 범법행위를 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취급되었으며, 집안 망신이라고 금기시 되던 때였다. 앞뒷집에서 사돈을 맺더라도 중매쟁이가 중간에 끼어야 혼사가 이루어지는게 통상적이었는데, 남 모르게 정상에 깃발을 꽂았는지 어쨌는지 아무튼 지금까지도 그 이유는 미스테리로 남아있다.
좌우간 내가 구식(舊式) 결혼식(전통결혼식)을 본 것은 그 날이 마지막이었다. 그렇게 재미(?)있었던......
신랑이 신부집에 결혼식(대례) 올리러 갈 때, 원래는 말을 타고 간다고 한다. 그러나 강원도 시골구석에서 자란 나는 그때까지 말타고 장가가는 신랑은 커녕 말 꼬랑지도 구경을 못해봤다. 말이 없으니 친구들이 기마전 할 때 말과 동일한 자세로 말을 만들어 신랑을 태우고 간다. 그 때, 친구들을 우인대표라고 불렀는데 지금으로 치면 신부 들러리와 유사한 역할이라고 생각하면 될 것이다. 우인대표가 말도 되고, 신랑도 보호해야 하는 임무를 맡았다. 왜냐하면, 신부집에 가기 전에 잿봉(재를 담은 봉지)이라는 것을 만들어 신랑에게 던지는 풍습이 있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금순이 누나를 낚아 채 가는 개똥이 때문에 닭 쫓던 개 꼴이 된 동네 총각들이 잔뜩 벼르고 있었다. 신랑집에서 신부집까지의 거리는 불과 200미터 정도 밖에 안 되지만 거기서 엄청난 일이 일어나고 말았다.
총각들이 잿봉을 만드는걸 나는 옆에서 지켜봤기 때문에 개똥이 형이 심히 걱정되었다.
지금이야 시골에서도 거의 수세식 화장실을 사용하지만, 40여년 전의 시골 재래식 화장실은 용변을 본 후 삽으로 잿구덩이에 직접 처리하는게 시골의 전형적인 분뇨처리시스템이었다. 그때는 나무 장작이나 볏짚 등으로 불을 때서 음식을 만들거나 소 여물을 끓이고 불이 사그라지면 남은 재를 화장실 뒷 편에 모아 두었다가 용변 뒷 처리한 것과 섞어서 거름으로 사용하는 것이 대다수 농가의 비료제조법이기 때문이다.
보통의 사람들은 잿봉을 던질 때 고운 재를 담아서 재미삼아 신랑에게 형식적으로 몇 번 던지고 우인대표들이 옷을 벗어서 그걸 방어하느라고 잠깐 실랑이 하다가 마는 게 보편적이었다.
한데 그 날 만든 잿봉은 내가 처음 본 제조기법을 사용하는 것이 아닌가!
우선 낙엽송 껍데기를 곱게 빻아서 가루로 만든 뒤 거기에다 고춧가루, 후춧가루를 또 섞었다.
그러더니 분뇨가 섞인 재에다 골고루 섞는 것이었다. 고춧가루나 후춧가루는 최루제 역할을 한다지만 낙엽송 껍질 가루는 어떤 역할을 할까?
지금으로 치면 석면 비슷한 작용이라고 생각하면 쉽다.
일단 몸에 묻으면 가렵고, 따갑고, 참 견디기 힘든 고통을 선물한다.
누나를 흠모했던 총각이 많은 만큼 잿봉의 개수가 비례하는 모양이다. 수십개의 잿봉을 만드느라 시간도 꽤 많이 걸렸다. 운명의 시각, 신랑이 말을 타고 신부집을 향하여 반쯤 갔을 때, 여기저기서 감정이 잔뜩 실린 잿봉의 집중사격이 가해졌다. 불과 몇분 아니 몇초 사이에 말은 무너지고 논산훈련소 화생방 훈련장의 개스실 출구를 연상케 하는 광경이 연출되었다. 이비규환! 아마 이런 것을 두고 하는 얘기일 것이다.
상상해 보라! 평생 처음 입은 양복에 잿가루와 더불어 묻어있는 누런색 물체에 덤으로 냄새까지......
결혼식? 눈물의 결혼식이 벌어졌는지 말았는지 모르게 지나갔다. 우인대표와 동네 총각들간에 드잡이까지 하던 끝에 사태가 진정되었다. 신부집에서 잿봉 던진 총각들을 고소하느니 마느니 하는 소리까지 나왔으니 딴은 대단한 결혼식이었다. 결혼식 집인지 초상집인지 분간이 잘 안 될 정도였으니 말이다.
아무튼 그 형이 나 고등학교 2학년 때(1973년) 아들을 낳았다. 워낙 자손이 귀한 집이라서 첫 아이를 낳는데, 성질급한 시어머니가 빨리 안 나온다고, 잡아 당기는 바람에 첫아들은 잘못됐고, 그 다음 낳은 놈이 유일한 혈육인데 이번에 결혼을 한다는 것이다.
아버지가 험한 꼴을 당한 얘기를 들었는지 이 놈은 장가 안 가겠다고 버티다가 이제서야 눈에 콩깍지가 씌었는가 보다. 그런데 참 이상하다. 그 아들놈 키가 180이나 된다니...... 콩 심은 데 콩나물이 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