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골 촌뜨기들의 추억
우리는 195.60년도에 태어났습니다.
우리는 기다랗고 커다란 안테나가 달린 흑백티비에 리모컨이 없는 로터리식이라 손으로 직접 채널을 돌렸던걸 기억합니다.
티비 화면이 잘 안나오면 한사람이 옥상에 올라가서,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면서 실외안테나를 좌우로 돌려 안테나 방향을 맞추곤 하였고, 티비에는 문도 달렸고, 열쇠가 있는 티비도 있었고, 다리도 네개가 있었습니다. (대한전선, 이코노TV)
우리동네는 TV가 몇대밖에
없었지
친구들과 동네사람들이 모여서 김일, 홍수환, 김태식 등의 경기와 여로, 팔도강산, 전우, 아씨 여로 같은 드라마와 보난자, 초원의 집, 전투, 육백만불의 사나이. 소머즈, 원더우먼, 형사 콜롬보, 등의 외국 드라마를 보았던걸 기억합니다.
우리는 아침부터 부엌에 나가 아궁이에 나무를 때거나
저녁에는 쇠죽을 끓여 소한데 먹이는 일 아버지 담배훔쳐
몰래피우기도 하여 엄마한데
들켜 죽도록 맞았지
일산화탄소를 마시며 연탄을 갈았습니다.
때로는 곤로에 불을 붙여 밥을 하시던 어머니를 기억합니다.
우리는 휴일이면 아침밥을 먹자마자 논으로 밭으로나가 농사를 도와야만 했으며
아버지 따라 나뭇하려도 가고
조금만 한 지게도 있어고
소, 염소 풀뜯겨야하고 일이 끝나면 해가 져 어두울 때까지 형, 누나, 언니, 동생들과 고구마, 밤 구워먹고
딱지와 구슬치기, 팽이치기, 자채기, 말뚝박기, 비닐포대와 나무썰매따기,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
고무줄놀이(끊기), 땅 따먹기, 숨박꼭질, 새총, 고무총이나 나무칼싸움, 다방구, 연날리기, 횃불깡통돌리기, 쥐불놀이를 하며 놀았습니다.
비가 오는 날이면 마다리 덮어
쉬고 가곤 했지요
핵교가다 땅땡치기로 빠지고
뽕, 산딸기, 꾸지뽕, 찔레꽃줄기, 삐비, 보리, 벗찌, 목화꽃 따먹고 참외, 수박 닭서리 해먹고
혼나기도 하고 용서받기도 하고ᆢ
우리는 타잔 황금박쥐, 타이거마스크, 마린보이, 아톰, 캔디, 달려라 캐산, 은하철도999, 마루치 아라치, 똘이장군, 마징가Z, 그랜다이져, 짱가 등 이런 만화영화를 보고 자랐습니다.
우리는 초등학교가 아닌 국민학교를 다녔습니다.
우리는 뽀빠이, 서울사탕.눈깔사탕, 새우깡 등의 과자와 삼양라면, 갓튀긴 핫도그 먹고 쫀드기, 쭐쭐이, 달고나, 띠기 같은 불량식품을 먹고 자랐으며,
동네마다 울려 퍼졌던 화약총 소리를 기억합니다.
우리는 운동회 때 동네잔치로 하얀 체육복을 입고 청,백머리띠 하고 담박질, 줄다리기, 공굴리기, 박터트리기 등을 무수히 연습했던걸 기억합니다.
우리는 하굣길에 애국가가 울려퍼지면 왼쪽 가슴에 손을 얹고 가던 길을 멈춰 서 있어야 했습니다.
우리는 새마을운동 이란것에 익숙해 어김없이 아침무렵 동네 어귀에 울려퍼지는
"새벽종이 울렸네- 새아침이 밝았네~"라는 노래를 듣고 자랐습니다.
우리는 "우리는 민족중흥의 역사적 사명을띠고 이 땅에 태어났다. 조상의 빛난 얼을 받들어~"로 시작하는 국민교육헌장을 아무 뜻도 모르고 외웠고,
"기미년 삼월일일~" 하는 3.1절 노래를 알고 있고,
"무찌르자 공산당~" 하는 6.25노래도 알고 있습니다.
학교에서는 뗏장, 대변(기생충 검사용), 나락, 쥐꼬리, 잔듸씨, 코스모스씨 가져오라고도 했고,
위생 차원에서 냇가에서 단체 목욕을 실시했고,
여름에는 홀딱벗고 물놀이하고
조막손으로 봄에는 식목하고,
가을에는 길가에 코스모스 심었으며,
학교 교정안에는 통일동산을 꾸몄습니다.
교정에는 이순신장군 동상과 반공소년 이승복 동상이 있었습니다.
우리는 박정희 대통령이 죽었단 소리를 듣고, 어린 맘에 나라가 망하는줄 알았고, 티비에서는 영정사진만 몇 일 동안 나왔던걸 기억합니다.
우리는 중.고등학교 시절에
죠다쉬, 빌리진, 뱅뱅, 써지오바렌테, 핀토스 등의 청바지들과 승마 바지도 기억합니다.
우리는 쇼 비디오쟈키에 나오는 뮤직비디오가 참 재미있었습니다.
우리는 올림픽을 보면서 손에 손잡고를 따라 불렀습니다.
우리는 영웅본색의 주윤발이 한국에 와서
"싸랑해요 밀키스" 라고 떠드는 걸 티비광고에서 봤습니다.
우리는 천녀유혼의 왕조현이 한국에 와서
"반했어요 크리미"라고 하는 것도 봤습니다.
우리는 '별이 빛나는 밤에'를 들으며 좋아하는 노래를 카세트 테이프에 녹음했으며, 팝송을 한글로 적어 따라부르곤 했습니다.
우리는 런던보이스, 왬, 모던토킹, 아하 라는 외국 가수들을 통해서 유로댄스란 걸 알았습니다.
우리는 친구들과 카세트 어깨에 매고, 모닥불을 피워놓고 밤새도록 놀았던 기억도 있습니다.
우리는 썬데이 서울이나 건강다이제스트를 기억하며, 플레이보이, 팬트하우스와 같은 외국성인잡지를 친구들과 돌려보았고,
어떤 불량한 녀석(?)이 볼(^ ^)만한 페이지를 몰래 찢어가곤 했습니다.
우리는 교복을 입고 학교를 다녔고,
학과목에 교련과목이 있어 제식훈련, 총검술과 구급법을 익혔습니다.
매점에서 회수권을 다발로 구입하고, 그걸 아끼려고 열 한장으로 작업해서 잘랐습니다.
구멍이 이쁜 토큰을 사용했던 기억도 있습니다.
우리는 이미자, 남진, 나훈아, 하춘화, 조미미, 배호, 펄시스터즈, 박상희, 윤항기, 패티김, 조영남, 이용복, 이현, 정미조, 김정호 등의 가요와
장현, 양희은, 어니언스, 서유석, 이장희, 송창식, 윤형주, 김세환, 트윈폴리오부터 남궁옥분, 소리새, 해바라기, 이문세, 이연실과 같은 통기타 포크송을 두루 섭렵하고,
들고양이들, 사랑과 평화, 산울림, 다섯손가락(다섯손가락의 이두헌은 남강8회이고 '노란 풍선'을 갠적으로 좋아합니다), 이치현과 벗님들을 비롯하여 대학 가요제에서 배출한 라이너스, 샌드페블스, 휘버스, 영사운드, 블랙테트라, 옥슨, 건아들, 로커스트, 송골매, 런웨이, 마그마, 해오라기, 노고지리 등 그룹사운드 음악을 들었습니다.
조용필과 이용과 전영록도 기억합니다.
이선희, 김현식, 이상은, 김광석, 유심초를 좋아했고, 그러다 나타난 서태지와 아이들의 노래에 세대차이를 느끼고, 한 때에는 맘모스, 크리스탈, 부림호텔 나이트에서 밤문화를 풍미했던 바가 있지만 젊은 아이들이 테이블에서 술 마시며 그 자리에서 춤을 춘다는 락카페가 참 신기했습니다.
암튼 우리는 밤 12시 넘어서 새벽까지 술집에서 당당하게 솔담배와 접대용(?) 청자담배를 피우며 술을 마실수 있다는게 너무너무 좋았습니다.^^.
우리는 삐삐의 암호와 같은 숫자의 뜻을 모두 알고, 3535란 숫자를 제일 좋아했습니다.
우리는 일부러 공중전화부스 옆에 가서 삐삐와 씨티폰을 꺼내 통화하며 뿌듯해 했습니다.
새우깡 안주에 소주 두대를 마시고
쌀 팔아 라면을 바꿔어 먹고
희한하게도 우리는 이렇게 제도의 변화란 변화는 모두 겪으며 그렇게 사회인이 되었습니다.
우리는 중요한 고비마다 닥쳐왔던 불리한 사회적 여건을 원망했지만 그래도 열심히 살았습니다.
어느 날 문득 뒤돌아보니 벌써 꺾어진 50대가 되어 있었고, 이제 나이를 하나 더 먹었습니다.
누구보다도 열심히 살아왔던 본인들 모습에 영화처럼 머릿속으로 옛 추억이 스쳐지나가는 당신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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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의 60대~!
내 좋은 친구들입니다.
그래도 우리세대는 공감되는 문화를 가지고 있다는것이 행복일지도~^!^~
출처 : 카카오톡에 온 글
정말 오래된 추억들이 글을 읽어 내려 가면서 공감하고
추억들이 머리에서 필름 지나가듯 생생하네요.
시골에서의 추억은 없어도 도시에서도 학교길 걸어 다니며
누가도 사먹고 동생들하고 냇가에서 수영하던 생각들이 나네요.
벌써 60대가 되어서 이나름대로 행복 하네요.
잠깐이라도 행복하게 해 주셔서 감사 합니다.
님의 댓글에 답을 하려고 글을 읽다보니
본 글의 출처를 빠뜨렸네요.
이런 실수를...
추억은 언제 떠올려도 아릿한 것이지요.
다시는 돌아갈 수 없다는 아쉬움때문일까요?
지금 기억으로는 아마도 결혼 2년후 쯤 다리 네개 달린
흑백TV(대한전선제품)를 처음 샀던 기억이 나는군요.
지금 와서 생각해 보면 힘들고 고생스럽던 지나간 시절이
즐거웠던 추억으로 기억 되는 건 오늘날의 삶이 그 전보다
훨씬 좋아졌다는 증거인가 봐요.
물론 힘 들었던 시절이 많았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