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데츠키행진곡에 대한 오해
라데츠키행진곡 Radetzky Marsch
오스트리아의 작곡가인 요한 슈트라우스 1세가 작곡한 행진곡.곡명을 '라데츠키'로 한 것은 요제프 라데츠키가 이탈리아 통일 전쟁 당시 오스트리아군을 이끌고 이탈리아에서 대승을 거둔 것을 기림으로서 오스트리아에 대한 애국심을 강조하기 위한 것입니다.
‘라데츠키 행진곡’의 주인공인 요제프 라데츠키는 이탈리아 롬바르디아의 독립운동을 철권으로 억압한 오스트리아 장군입니다.1848년, 지나친 언론 검열로 ‘경찰국가’라는 오명을 쓰며 오스트리아 합스부르크 제국의 공포정치를 주도한 장본인이던 메테르니히가 드디어 실각했습니다. 이를 계기로 압제에 시달리던 이탈리아 북부에서는 롬바르디아 지방을 중심으로 독립운동이 불길처럼 타올랐습니다.하지만 그 대가는 참혹했습니다.라데츠키가 이끄는 오스트리아 제국군은 잔인한 보복을 자행하며 롬바르디아 평원을 피로 물들였고,1848년 8월 31일 라데츠키와 휘하 병사들은 빈으로 개선했습니다.이때를 놓치지 않고 요한 슈트라우스 1세는 현재 시립공원으로 변한 빈 성벽 앞에서 거창하게 열린 환영행사를 위해 행진곡을 작곡해 바쳤습니다.제목은 ‘라데츠키 행진곡’, 결과는 대성공이었지만 슈트라우스는 자국 평론가로부터도 정치적인 음악가라는 비난을 들으며 피신하는 수모를 당했습니다. 이탈리아 민중을 무자비하게 학살한 것에 대한 자정의 목소리가 높았기 때문입니다.재미있는 점으로, 아들인 요한 슈트라우스 2세는 당시 공화주의-자유주의 성향이 강해서 이러한 아버지의 행동을 매우 싫어했다고 합니다.1월 1일이면 우리나라를 비롯하여 전 세계 수십 개 국가에서 생방송으로 빈 필하모닉의 신년음악회를 시청하고 있습니다.슈트라우스 일가의 왈츠와 폴카가 주요 레퍼토리인 ‘이벤트’는 빈이 내세우는 가장 대중적인 음악상품입니다. 그 마지막에 ‘라데츠키 행진곡’이 연주되고, 객석의 청중은 초연할 때 군인들이 박수친 것을 그대로 따라 합니다. 이탈리아 입장에서 볼 때 라데츠키는 우리에게 일제의 이토 히로부미와도 같은 철천지원수이므로‘라데츠키 행진곡’은 당연히 금기시됩니다. 식민지였던 이탈리아 입장에서 보면 자국민의 피로 만들어진 음악이라 하였고 베토벤은 왈츠와 같은 싸구려 음악은 쓰레기통에나 들어가야 한다며 분노했다. 빈에서도 뜻있는 음악가들은 기회주의적인 슈트라우스 일가를 싫어했다고 합니다..
이 곡이 처음 연주될때 왕이 너무 감명받은 나머지 기립박수를 한것으로 유명합니다.이후 정치적 성향을 떠나 대중들에게 인기있는 곡으로 자리잡았습니다. 현대에는 행진곡 뿐만 아니라 그 자체의 밝고 경쾌한 분위기 때문에 축하나 파티에 사용하기도 합니다.빈 필하모닉 오케스트라의 명물 공연인 신년음악회의 단골 엔딩앙코르 곡이기도 합니다.
이 곡의 특징 중 하나는, 바로 관객들이 연주에 기립박수로서 참가한다는 것입니다.아마 초연때 왕이 기립박수를 한것이 이어져 전통이 되지 않았나 싶은데,기립하지 않더라도 박수만은 꼭 칩니다.이 때문에 지휘자가 악단 뿐만 아니라 관객들에게도 몸을 돌려서 지휘하는 모습을 연출하기도 하며 클래식 공연에서 유일하게 박수를 칠수 있는 곡이라고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