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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닮음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

동행 189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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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화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


/이 상 화



지금은 남의 땅-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


나는 온 몸에 색깔을 받고


푸른 하늘 푸른 들이 맞붙은 곳으로,


가르마같은 논길을 따라 꿈 속을 가듯 걸어만 간다.




입술을 다문 하늘아 들아


내 맘에는 내 혼자 온 것 같지를 않구나!


네가 끌었느냐 누가 부르더냐 답답워라 말을 해다오.




바람은 내 귀에 속삭이며,


한자욱도 섰지 마라 옷자락을 흔들고.


종다리는 울타리 너머 아가씨같이 구름 뒤에서 반갑다 웃네.




고맙게 잘 자란 보리밭아,


간밤 자정이 넘어 내리던 고운 비로


너는 삼단같은 머리털을 감았구나. 내 머리조차 가뿐하다.




혼자라도 가쁘게 나가자.


마른 논을 안고 도는 착한 도랑이


젖먹이 달래는 노래를 하고, 제 혼자 어깨춤만 추고 가네.




나비, 제비야, 깝치지 마라.


맨드라미 들마꽃에도 인사를 해야지.


아주까리 기름 바른 이가 지심 매던 그 들이라도 보고 싶다.




내 손에 호미를 쥐어다오.


살진 젖가슴과 같은 부드러운 이 흙을


발목이 시리도록 밟아도 보고, 좋은 땀조차 흘리고 싶다.




강가에 나온 아이와 같이,


셈도 모르고, 끝도 없이 닫는 내 혼아,


무엇을 찾느냐 어디로 가느냐, 웃어웁다, 답을 하려무나.




나는 온 몸에 풋내를 띠고,


푸른 웃음 푸른 설움이 어우러진 사이로,


다리를 절며 하루를 걷는다. 아마도 봄 신명이 지폈나 보다.




그러나 지금은- 들을 빼앗겨 봄조차 빼앗기겠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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