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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달이 다 닳고

동행 199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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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구

오늘은 달이 다 닳고

 

 

/ 민구



나무 그늘에도 뼈가 있다


그늘에 셀 수 없이 많은 구멍이 나있다 바람만 불어도 쉽게 벌어지는 구멍을 피해 앉아본다


수족이 시린 저 앞산 느티나무의 머리를 감기는 건 오랫동안 곤줄박이의 몫이었다


곤줄박이는 나무의 가는 모근을 모아서 집을 짓는다


눈이 선한 저 새들에게도 바람을 가르는 날카로운 연장이 있다 얼마 전 죽은 곤줄박이에

떼 지어 모인 개미들이 그것을 수거해가는 걸 본 적이 있다

일과를 마친 새들은 둥지로 돌아와서 달이 떠오를 무렵 다시 하늘로 솟구치는데,


이때 달은 비누다


뿌리가 단단히 박혀서 번뇌만으로는 달에 못 미치는 나무의 머리통을 곤줄박이가 대신,

벅벅 긁어주는지, 나무 아래 하얀 달 거품이 흥건하다


오늘은 달이 다 닳고 잡히는 족족 손에서 빠져나가 저만치 걸렸나


우물에 가서 밤새 몸을 불리는 달을 봐라


여간 해서 불어나지 않는 욕망의 칼,


부릅뜨고 나를 노린다

(2009 조선일보 신춘문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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