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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을 깨고 나온 새처럼

오작교 3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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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새해 달력을 보니 지나온 한 해가 묵은 세월로 빠져나가려고 한다. 무슨 일을 하면서 또 한 해를 소모해 버렸는지 새삼스레 묻는다. 그러다가 문득 내 남은 세월의 잔고는 얼마나 될까 하는 생각에 정신이 번쩍 든다. 누구나 나이가 들면 이런 경험을 하게 될 것이다.

  그러나 삶은 과거나 미래에 있지 않고 바로 지금 이 자리에서 이렇게 살고 있음임을 잊지 말아야 한다. 삶의 비참함은 죽는다는 사실보다도 살아 있는 동안 우리 내부에서 무언가 죽어간다는 사실에 있다. 가령 꽃이나 달을 보고도 반길 줄 모르는 무뎌진 감성, 저녁노을 앞에서 지나온 자신의 삶을 되돌아볼 줄 모르는 무감각, 넋을 잃고 텔레비전 앞에서 허물어져 가는 일상 등, 이런 현상이 곧 죽음에 한 걸음씩 다가섬이다.

  저물어 가는 이 가을, 한 친지로부터 반가운 사연을 받았다. 지난여름 20년 가까이 살던 집에서 새집으로 이사를 했는데 오랫동안 꿈꾸어 오던 ‘혼자만의 공간’을 마련했다고 알려 왔다. 언제라도 혼자일 수 있는 텅 빈 공간을…….

  그 공간의 이름을 ‘도솔암’이라고 했단다. 도솔은 도솔천에서 온 말인데 그 뜻은 지족천(知足天), 그러므로 만족할 줄 알고 살면 그 자리가 곧 최상의 안락한 세계라는 뜻이다. 온갖 얽힘에서 벗어나 알을 깨고 나온 새처럼 훨훨 날 수 있다면 그곳이 곧 도솔암의 존재 의미일 것이다.

  누구나 인생의 황혼기에 접어들면 그런 소원을 이룰 수 있어야 한다. 한 인간으로서 가정적인 의무나 사회적인 역할을 할 만큼 했으면 이제는 자기 자신을 위해 남은 세월을 활용할 줄 알아야 한다. 어차피 인간사란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면서 홀로 남게 마련이다. 이 세상이 올 때도 홀로 왔듯이 언젠가는 혼자서 먼 길을 떠나지 않을 수 없다. 이것이 엄연한 삶의 길이고 덧없는 인생사이다.

  사람은 나이가 들수록 보다 성숙해져야 한다. 나이 들어서도 젊은 시절이나 다름없이 생활의 도구인 물건에 얽매이거나 욕심을 부린다면 그이 인생은 추하다. 어떤 물질이나 관계 속에서 도 그 소용돌이에 휘말리지 않고 적당한 거리를 두고 바라보며 즐길 수도 있어야 한다. 자신을 삶의 변두리가 아닌 중심에 두면 어떤 환경이나 상황에도 크게 흔들림이 없을 것이다. 모든 것을 담담하게 받아들일 수 있는 삶의 지혜와 따뜻한 가슴을 지녀야 한다.
 


  인생의 황혼기는 묵은 가지에서 새롭게 피어나는 꽃일 수 있어야 한다. 이 몸은 조금씩 이지러져 가지만 마음은 샘물처럼 차오를 수 있어야 한다. 자신에게 주어진 한정된 시간을 무가치한 일에 결코 낭비하지 말아야 한다.

  나이가 어리거나 많거나 간에 항상 배우고 익히면서 탐구하는 노력을 기울이지 않으면 누구나 삶에 녹이 슨다. 깨어 있고자 하는 사람은 삶의 종착점에 이를 때까지 자신을 묵혀 두지 않고 거듭거듭 새롭게 일깨워야 한다. 이런 사람은 이다음 생의 문전에 섰을 때도 당당할 것이다.

  이제 나이도 들 만큼 들었으니 그만 쉬라는 이웃의 권고를 듣고 디오게네서는 이와 같이 말한다.

  “내가 경기장에서 달리기를 하고 있을 때, 결승점이 가까워졌다고 해서 그만 멈추어야 하겠는가?”

  디오게네스의 이 말을 나는 요즘 화두처럼 곰곰이 되뇌이고 있다. 그러다 보면 결승점만이 아니라 출발점도 저만치 보인다.

글출처 : 아름다운 마무리(법정스님 : 문학의 숲) 中에서.....
 

  
2012.03.09 (10:17:19)
[레벨:9]id: 귀비
 
 
 

착한 일을 한 사람은

이 세상과 저 세상에서 기뻐한다

"착한 일을 했는가" 싶어 기뻐하고

좋은 세상에 가서 거듭 기뻐한다..

 

"인생은 얼마나 소중한 경험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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