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침묵의 눈

오작교 6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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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명 서 있는 사람들
    선가(禪家)에 ‘목격전수(目擊傳授)’란 말이 있다. 입 벌려 말하지 않고 눈끼리 마주칠 때 전할 것을 전해 준다는 뜻이다. 사람기리 가까워지고 멀어지는 것도 사실은 언어 이전의 눈길을 통해서 이루어진다. 말을 설명하고 해설하고, 도 주석을 달아야 하는 번거로움과 시끄러움이 따르지만 눈은 그럴 필요가 없다. 마주보면 이내 알아차릴 수 있고, 마음속까지도 훤히 들여다볼 수가 있다. 그래서 가까운 사이에는 소리 내는 말보다도 오히려 침묵의 눈으로 뜻을 전하고 받아들인다.

   그렇다 하더라도 눈은 어디까지나 ‘창문’에 지나지 않는 것. 사물을 이해하고 판단하는 것은 눈이 아니라 마음이다. 마음의 빛이 눈으로 나타날 뿐. 그리기 때문에 창문인 그 눈을 통해서 우리들은 그 사람의 실체를 파악하려는 것이다.

   오늘날 지각이 있는 사람들의 운길에서 우리는 희망보다는 절망을 느끼는 수가 더러 있다. 무엇을 생각함인지 초점을 잃고 몽롱하게 흐려 있는 눈, 출세를 위해 약삭빠르게 처신하느라고 노상 흘깃흘깃 곁눈질을 하는 눈, 앉은 자리가 편치 않음인지 불안하고 초조해 하는 눈, 자기 뜻에 거슬리면 잡아먹을 듯 살기등등한 그런 눈을 대할 때 우리는 살맛을 잃는다.

   돈이나 권력을 가진 자들의 오만하고 차디찬 눈초리는 그래도 견디어낼 수 있다. 억울한 일을 당하고서도 어디에 호소할 길마저 없는 사람들의 그 불행한 눈만은 도저히 견디어낼 수 없다. 하늘을 바라보고 당을 굽어보는 그 멍한 눈이 우리들의 양심을 찌르고 있기 때문이다. 가령, 도살장으로 끌려 들어가는 소의 눈을 본 사람을 알 것이다. 실컷 부림을 당하다가 아무 죄도 없이 죽으러 가는 소의 억을고 슬픈 그 눈을. 그러나 쇠고기 없이는 밥을 못 먹는 사람은 그 눈이 표현하고 있는 생명의 절규를 판독하지 못한다. 나만 맛있게 잘 먹고 잘살면 그만이니까.

   <인간의 대지>에서 조종사인 한 사나이는 비행기 사고로 조난을 당한다. 영하 40도의 추위 속에서 먹지도 못한 채 며칠을 걷다가 쓰러져 가물가물 사경을 헤맨다. 그때 문득 아내의 얼굴이. 동료들의 얼굴이 떠오른다. 라디오 앞에서 자기의 생환을 애타게 기다리고 있는 그 눈들이 떠오르자, 이제는 자기 자신이 구제의 대상이 아니라 자기를 기다리며 떨고 있는 그 눈들을 구해 줘야 한다는 생각으로 바뀐다. 자기의 손에 그들의 슬픔과 기쁨이 쥐어진 것이다. 이렇게 해서 그는 마침내 그들 곁으로 돌아간다. 아내와 친구들의 맑은 눈이 그를 살려낸 것이다.

   맑고 선량하고 고요한, 그래서 조금은 슬프게 보이는 눈이 우리 곁에 있다는 것은 하나의 구원일 수 있다.

   10여 년 전 산길에서 우연히 마주친 한 수녀님의 눈을 나는 두고두고 잊을 수 없다. 그 눈길과 마주쳤을 때 내 안에서는 전율 같은 것이 일어났다.

   그것은 아득한 전생부터 길이 들어온 침묵의 눈이었던 것이다. 그 눈을 밖으로 내닫기만 하는 현대 여성의 들뜬 눈이 아니라, 자기 자신을 안으로 다스리는 맑고 고요한 수행자의 눈이었다. 진실한 수행자의 눈은 안으로 열려 있다. 내면의 길을 통해 현상 배후의 일까지도 멀리 내다볼 줄을 안다.

   그때의 그 눈길이 때때로 나 자신을 맑게 정화시켜 주고 있다. 영원한 영성이 우리를 이끌어 올린다는 말은 조금도 빈말이 아닐 것 같다.
<1976 . 12>

글출처 : 서 있는 사람들(法頂 스님, 샘터) 中에서......
 
 

  
2013.12.12 (21:56:08)
[레벨:4]길벗
 
 
 

아!

이 글이었군요.

이해인 수녀님께서 자기가 스님의 글 속에 나오는 수녀로 오해를 받아 한 동안 스님께 가까이하기가 어려웠다는 그런 글을 읽은 적이 있습니다.

법정스님같은 분, 이해인 수녀님같은 분과 같은 시대, 같은 땅에 살았다는 것을 복으로 생각합니다.

 

목격전수

나이가 드니 췌언이 자꾸 늘어갑니다.

눈빛으로 전달하며 전달받는 훈련을 해야겠습니다.

영원한 영성이 우리를 이끌어준다. - 참 맑고 향기나는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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