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정고무신/한인애


어둡고 구멍 숭숭 난 시간을 질기게도 걸어 왔던거야, 마지막 호흡을 가다듬어야 할
시간인거야, 쓸쓸한 심장을 데워주던 기름통에 노란불이 켜지는 순간은 누구에게나
오는 법, 마지막 한 방울의 기름조차 떨어지면 그 자리에 그대로 주저앉아 눈을 감고
싶었을 뿐이야, 뚝.

마을 소공원의 벤취에
날마다 나와 앉으시던 노 할머니
검버섯 같이 내려와 앉는 낙엽을
떨리는 손으로 줍고 있었다
담쟁이처럼 얽혀 살던 눈빛 하나가
햇살처럼 손을 포개며
‘감자 먹고 가지, 왜 그냥 갔어’ 하면
‘응, 응’ 하고 채 머리만 흔들더니
그 잘디잔 허들 걸음으로 어디를 가셨나

바람이 조금 더 일렁일 뿐인데 마음이 자꾸 울컥거린다
지독한 그리움이니 까닭모를 눈물이니 하는 애상이 구름처럼 떠다니고
손안에는 무료한 시간만 들락거린다, 무릎이 비어가는 계절
햇살은 자꾸 등을 기대오지만, 더 이상 달리지 못하는 시간이 이제는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