텅 빈, 충만한 사랑으로

예수님의 시신은 내 기억안에 형상 그대로
제대 위에 온전히 반듯이 모셔져 있었고
오로지, 온몸으로 그분만을 섬기려는
가장 낮고 낮은 겸손한 자로서의 소명을 기다리며
다소곶이 꿇어 앉은 모습으로
누군가에 의해 나의 손에 빈 잔이 들려지고
고난의 술이 그득히 부어져
채워진 잔을 모두 마셔야 한다는
버거운 표정의 내 여린 몸짓에
등뒤로 그대가 다가와 술잔을 거들며
7할은 나를 위해 대신 마셔주고
3할은 남겨 나의 입술에 잔을 기울여 준다
마주 선 그이와 내 손에 티끌하나 볼 수 없는
순백의 한 장에 종이가 맞들려져 문밖으로 나오니
백지는 성령의 불꽃이 되어
맑고 파아란 투명한 하늘을 향해
활활 타오르는 것이었다
꿈이련만, 가슴이 놀랍고도 뜨겁게 달아올라
일어나 한참을 그렇게 멍하니
기쁨에 충만해져 어쩔 줄을 몰랐다

섭리하신 만남이었을까
그저, 감사해야지
그저, 사랑해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