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 드셨습니까?


"물 드셨습니까?"
듣기 따라서는 상당히 언짢은 인사를 얼마 전에 종종 받았었다.
우리네 하는 말 가운데 "물 먹었다."라는 말이 일상 쓰는 일반적인 뜻 보담은 무슨 일을 도모했는데 잘 이루어지질 못했거나
"뒤통수를 맞지 않으셨습니까?" 하는 빈정거림 투로 먼저 들리기 때문이다

그런데 초봄에 이 물 먹는 일이 큰 유행이 되어있다.
내가 사는 지리산 자락에서도 백운산에서 나는 고로쇠나무 물을 먹으러 간다고 야단들이었다.
염소를 한 마리 잡아서 밤새워 먹고 마시거나 아니면 쥐포 같은 염도가 높은 음식물을 가져가서 같이 먹어야 물을 많이 마실 수 있다고들 한다.
의학적으로는 어디가 어떻게 좋은지 알아보지도 않고 알고 싶지도 않지만 며칠 전이 곡우(穀雨)여서 관심은 간다.
예전 우리네 조상들도 곡우 무렵에 나무에 물이 많이 오르는 연유로 이름 있는 산을 찾아 "곡우 물"을 마시러 갔었다.
곡우 물은 주로 산 다래, 자작나무, 박달나무 등에 상처를 내서 흘러내리는 수액(水液)이다.
몸에 좋다고 해서 전라도, 경상도, 강원도 등에서는 깊은 산 속으로 곡우 물을 마시러 가는 풍속도 있었다고 한다.
요즘에는 별로 따지며 마시는 것 같지 않지만 경칩(驚蟄)의 고로쇠 물은 여자 물이라 해서 남자에게 좋고, 곡우 물은 남자 물이어서 여자들에게 더 좋다고 했다.
거자수라고 하는 자작나무 수액은 지리산 밑 구례 등지에서 특히 많이 나며 그곳에서 곡우 때는 약수제까지 지낸다고 한다.
또 이맘때쯤 곡우 전에 여린 잎을 따서 만든 녹차를 우전 차(雨前茶)라고 부르는데, 차를 조금이라도 안다는 사람들은 최상품으로 친다.
우전 차는 찻물의 온도를 60도쯤으로 하여 우려야 제맛을 음미할 수 있으니 이 또한 바쁘게 사는 요즘에는 맛보기 쉽지 않은 은근함이 아닌가?

몸에 좋다고만 하면 이것저것 가리지 않고 바쁘게 먹고 마시는 우리네의 모습을 보며, 옛 사람들은 물 하나를 마셔도 이렇게 따져가며, 기다려가며 마시는 여유를 가졌음이 부럽다.


-  글 :  오광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