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에 장막 모진 설움 받고서 살아를 간들

천지간에 너와 난데 변함 있으랴

금순아 굳세어다오 북진 통일 그 날이 되면

손을 잡고 울어 보자 얼싸안고 춤도 추어보자.

 

굳세어라 금순아 3절입니다. 철의 장막이 옳을 터인데 철에 장막으로 잘못 쓰고 있습니다.

“의”와 “에”를 연구해 봅시다. “~의”는 우리의 각오, 나의 조국, 사랑의 미로여,

나의 살던 고향은“과 같이 소유격 내지는 속성을 나타낼 때 씁니다. ”~에“는 장소 또는

시간입니다. ”두시에 만나자“ ”남산 시계탑 앞에 서 있어라“ 이것이 흔히 혼동되는 이유가

영샘이 형님이나 대중이 슨상님께서 태어나신 경상도와 전라도의 ”의“라는 발음을 힘들어 하는

지방 사투리 영향이 쫌은 있지 않았겠나 뭐 이런 생각이 드는기라.

 

여기에선 영어 못 한다고 할 때 “I can't speak English"라고 하면 그나마 좀 하는 줄

알고 붙잡고 늘어질지 모릅니다. 간단히 ”No English"라고 하면 더 이상 말 안 붙이지요.

Adult school이라고 영어 가르치는 곳이 있어 집사람이 죽을 맛으로 다니고 있는데

같은 초보 반에 한참 동생뻘인 아주 씩씩한 여자 목사가 있답니다. 길 가다 어느 누가

붙잡고 이야길 해도 고개를 끄덕거리며 말 중간 중간마다 “Really?"하며 되물어가면서

만면에 웃음을 띠고 잘 알아 듣는 척 한답니다. 목사더러 무슨 말 하더냐고 와이프가

물어보면 정말 아무것도 모른대요. 그 집 아들과 같이 외출을 해도 똑 같은 행태를 보이는데

아들이 간절히 부탁하는 말이 "못 알아들으면서 제발 아무 때나 Really란 말 쓰지 말고

가만히 그냥 있으라"고 "진짜 진짜 가슴이 조마조마해서 죽겠다"고.

 

“여자 목사가 만면에 웃음을 띠다”에서 “띄다”라고 쓰는 분들 많으시죠?

‘띠다’는 “붉은 색을 띠다”, “미소를 띠다”, “사명을 띠다”, 활기를 띠다“와 같이

색깔, 표정, 업무, 감정 등에 쓰이고 이와 같이 ‘를’이나 ‘을’이 붙는 목적어가

앞에 있으면 ‘띠다’를 씁니다. ‘띄다’는 ”눈에 띄다”나 “귀에 번쩍 띄다”와 같은 곳에만 쓰입니다.

 

왠과 웬을 구별해 봅시다. 우리말 중에서 '왠'이 들어가는 말은 '왜인지'의 준말인

'왠지' 하나밖에 없습니다. 그 나머지는 전부 '웬'이 쓰인다고 봐야 합니다. 웬의 용법으로는

'어떠한, 어찌된'이라는 뜻을 가진 관형사로서 명사를 꾸밉니다. 웬 떡이야! 웬 돈이야?

이와 같이 쓰입니다. 또 합성어를 반드는 구성요소로도 쓰입니다. 웬일, 웬걸, 웬만큼,

웬만하다와 같이 웬이 아예 붙어서 합성어가 된 경우는 위의 네 단어뿐입니다.(띄우면 안 됨.)

 

뭐 재미없는 맞춤법은 이쯤 해두고 쓰다가 뭐 생각이 나면 중간 중간 양념으로 넣기로 하고

옛날에 있었던 기가 막힌 사건을 한 번 야그해 볼랍니다. 가끔 이런 친구 있지요? 한참

흥이 오른 좌석에서 말재간이라고는 눈꼽만큼도 없는 친구가 덩달아 즐거워

때 마침 번뜩 떠오르는 이야깃거리가 있어 “내가 우습고 재미있는 이야기 해 줄게”.

들어보면 정말로 항개도 재미없는 것을. 그냥 이야기 중에 자연스럽게 나오면 되는데

꼭 재미있는 이야기해 준다고 서두를 떼곤 합니다. 그래도 마무리나 하면 다행인데

처음부터 본론으로 안 들어가고 사돈의 팔촌에 지나가는 나그네까지 들먹이며 동구 밖

멀리서 더듬어 들어오다가 매번 시작도 하기 전에 누군가에게 인터셉트되어서 종국에는

애꿎은 담배나 뻑뻑 피어대는 그런 못난이를 흔히 봅니다. 측은한 일이지요. 기가 막힌

야그 한다고 해놓고선 서론이 길어져버린 나도 똑같은 처지가 되지 않을까 심히 걱정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