늙은 할배 일기

    일평생 땅만 파먹고 사신 농부가 있었다. 개구리, 물방개, 잠자리, 바람, 잡풀사이에서 새벽부터 어둑어둑 땅거미가 내릴 때까지 땅만 파고 살았다. 밭두렁에 살구꽃 피는 봄이면 황소로 논을 갈고 거름을 내고, 못자리를 내어 볍씨를 뿌리고 숨이 칵칵 막히는 7-8월 땡볕에는 목줄을 타고 내리는 땀 소금덩어리가 그의 논밭에 흘리는 것이 서너 말은 넘었으리라. 흉년이 들어, 온 식구들이 먹거리가 떨어졌던 어느 해는 달랑 괭이 하나, 지게 하나만 갖고 석 달이 넘도록 척박한 땅을 일구다가 등허리에 등창이 나고 헐은 그의 등허리에 파리가 쉬를 실어 구더기가 일었다. 그 이후 마을 사람들은 누군가 열심이 일하는 사람을 보고는 "덕명이 일하 듯 한다" 혹은 “덕명이보다 더 지독하다” 했고 그의 이름 석자 그 자체가 그 지방에서 일 잘하는 대명사가 되어갔다. 그렇게 순 땅만 파먹고 뼈가 녹도록 일하여 9남매를 다 키워 객지로 내 보내고 어느 정도 살만하니 할머니가 먼저 덜컥 세상을 뜨셨다. 객지 자식들에게 부담 된다며 홀로 고향에서 직접 밥을 지어 먹고 살다가 나이가 80을 넘기니 다리가 후들거리고 더 이상 농사도 못 지을 정도로 육신이 노쇠해지자 김 노인은 땅을 팔고 고향 집을 버리고 서울로 갔다. 왜냐하면 서울에 사는 아들들이 하나같이 "아부지요, 우리가 노후를 편하게 모실 테니 땅 팔아서 서울로 올라 오이소" 했기 때문이다. 보따리를 싸서 고향을 떠나 서울로 간 김 노인이 무슨 연유인지 3개 월 만에 다시 고향으로 내려 오셨다. 밝은 대낮에는 고향 마실로 들어서기 부끄러워 읍내에서 서성거리다가 캄캄한 밤이 되어서야 고향 마을로 돌아와서, 버리고 간 고향 빈집으로 더듬더듬 다시 들어가셨는데 간간히 꺼이꺼이 낮은 울음소리가 새벽이 다 되도록 들렸다. 고향 빈집에서 며칠 밤을 보내시고 새벽에 일어나 마당 물물로 목욕을 하고 할머니가 살아 있을 때 만들어 주신 깨끗한 한복을 갈아입으시고..... 다시 고향 집을 나섰다. 마침 느티나무 아래서 당파 씨를 고르던 이웃집 시울실 할매와 구담댁 할매가 뽀오얀 한복을 입고 나서는 김 노인을 보시고는 "저 어르신 아침부터 옷을 말끔하게 갈아입고 어디가시노?...." "서울 잘 사는 아들한데 호강하러 가신분이 저렇게 돌아와서 당체 말도 아니하니시 맴이 아프이더" "어제 아침에 죽을 끓여서 갖다드렸는데 한 숟가락도 안 먹었띠더.. 당뇨도 더 심하고... 이제 허리 병도 도져서 걸음도 잘 못 걸으실 것 같다하더니 읍내 약 사러 가는 모양있시더!" "빈집에 전기도 없어 우짜닛껴!" "전기는 어제 동장 말로는 다음 주에 불 키도록 한전에서 다시 전기 넣어 준다카디더만... 남의 못타리씨더" 당파 씨에 묻은 흙먼지를 털털 털면서 구담댁 할매가 "그 많튼 문전옥답 다 팔아 자식들 한데 다 떼이뿌고..... 늙으막에 남의 일 같지 안니더" 휴....하고 긴 한숨을 솥아 내쉬었다. 시울실 할매와 구담 할매가 걱정스러운 듯이 가만가만 힘겹게 걸어가시는 김 노인 쪽을 바라보는데.. 김 노인은 읍내 길로 아니 가시고 참 진달래꽃이 붉게 피어 있는 마을 앞 산으로 오르셨다. "저 어르신 어디가는데..읍내로 안 가시고 앞산으로 올라 가시노?" "할마이 묘에가시나..." "이제 와서 할마이 묘에 간들 무슨 소용있닛껴...." 시울실 할매가 당파 뿌리를 조금전 보다 더 쎄게 땅에 탈탈 털면서 눈시울을 훔치셨다. 그날 해가 어둑어둑해져도 앞산으로 오르신 할아버지는 마을로 내려오시지 않았다. 다음 날 ..... 동네 할매들이 김 노인 빈집 처마에 반쯤 비어있는 농약병을 들고는 "우얏꼬 우앗꼬" 탄식을 하며 눈물을 훔치셨고 읍내 형사들이 전경들을 앞세우고 앞 산 김 노인 할머니 산소 쪽으로 급하게 뛰어 올라가고 마을 어귀에는 읍내 권 병원 앰불런스 한대가 다급하게 왱왱 거리면서 들어서고 있었다. 그리고 8년이 흘렀다. 늙은 농부가 사시던 고향 집은 다 허물어지고 늙은 노인이 살아 생전에 땀을 뻘뻘 흘리시며 거름을 가득이 지고 논밭으로 다니시던 지게에는 지난 해 피었던 해묵은 나팔꽃 줄기가 걸쳐 있었다.

Once Upon a Tim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