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은 길을 따라 이어지고...




나 여기 왔네 바람에 실려  
여름의 첫 날  
바람이 또 나를 데려가리  
가을의 마지막 날.

혼자 와서
혼자 마시고  
혼자 웃고  
혼자 울고  
혼자 떠나.

동도 아니고  
서도 아니고  
북도 아니고  
남도 아니고  
다만 내가 지금 서 있는 이 자리.



마른 꼴 비에 젖어
촉촉한 봄 냄새에
씰룩이는 젖소 코.

비포장도로의 아득한 끝은
구름 낀 하늘을 물고  
흙먼지 위에는
빗물 몇 방울.



늘 누군가와
약속을 한 듯하여라
오지 않을 사람과……
이름이 기억나지 않는 사람과.

벌써 몇 해째인가
계절 사이에
걸려 나부끼기를
지푸라기 한 올처럼.



외로운 첫 가을
달 없는 하늘
가슴엔
노래 백 가닥.

비는 먼 바다에 쏟아지고―
들은 바싹 타 들어가고.



논일하는 농부들 노래
기뻐도

슬퍼도
가락은 늘 하나.
내가 정말 믿는 것
밤도
낮도
끝이 있다는 것.



눈밭에
발가벗은 아이 천 명.
한겨울의 악몽.

바람이
울부짖고
이리가
울부짖고―
달은
숨었나
검은 구름 뒤로.



눈 덮인 벌판의
검은 두건 까마귀
자기를 보고 놀라다.

밤은
길고
낮은
길고
생은
짧아.



눈밭에 사람 발자국―
볼 일 보러 가셨나?
돌아올까?
이 길로?

눈 덮인
묘지에
눈 녹는
묘비 셋―
어린 죽음 셋.



생각할수록
도무지 모르겠어
죽음을 그리
두려워할 이유를.

눈 녹은 물에
저 건너 강 몸 뒤치는 소리
다시 들을 날 있을까.



어느새
인생 하나 지나와
나를 생각하며 우네.

나의 죄를 용서해 주기를
잊어 주기를―
그러나 내가 다 잊을 만큼
깨끗이는 말고.

사진,시 / 압바스 키아로스타미(영화감독)
번역 / 정영묵



* 오작교님에 의해서 게시물 이동되었습니다 (2008-03-07 07:4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