밥과 잠과 그리고 사랑 / 김승희


오늘도 밥을 먹었습니다.
빈곤한 밥상이긴 하지만
하루 세 끼를.
오늘도 잠을 잤습니다.
지렁이처럼 게으른
하루 온종일의 잠을.
그리고 사랑도 생각했습니다.
어느덧 식은 숭늉처럼 미지근해져 버린
그런 서운한
사랑을.

인생이
삶이
사랑이
이렇게 서운하게 달아나는 것이
못내 쓸쓸해져서
치약 튜브를 마지막까지 힘껏 짜서
이빨을 닦아 보고
그리고 목욕탕 거울 앞에
우두커니 서서 바라봅니다.

자신이 가을처럼 느껴집니다.
참을 수 없이 허전한
가을 사랑
하나로.

그래도 우리는 밥을 먹고
잠을 자고
영원의 색인을 찾듯이
사랑하는 사람 그 마음의 제목을 찾아
절망의 목차를 한 장 한 장
넘겨 보아야

따름이
아닌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