담쟁이/도종환


저것은 벽

어쩔 수 없는 벽이라고 우리가 느낄 때

그때

담쟁이는 말없이 그 벽을 오른다.

물 한 방울 없고 씨앗 한 톨 살아남을 수 없는  

저것은 절망의 벽이라고 말할  때

담쟁이는 서두르지 않고 앞으로 나아간다.

한 뼘이라도  꼭 여럿이 함께 손을 잡고 올라간다.

푸르게 절망을 다 덮을 때까지

바로 그 절망을 잡고  놓지 않는다.

저것은 넘을 수 없는 벽이라고  고개를 떨구고 있을 때

담쟁이 잎 하나는  담쟁이 잎 수천개를 이끌고

결국 그 벽을 넘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