벌써 4주전인 3월 5일 일요일 이었다. 아침식사를 늦게 마치고 산행준비를 해서 집사람과 집을 나서면서 배가 부르면 산을 타기 힘들다고 김밥 집에 들러 1,000원짜리 김밥 3줄만을 구입해서 배낭에 넣고, 다른 준비물은 오렌지 4개 약간의 과자, 물 2.5리터, 비상시를 대비해서 등산용 후래쉬를 준비해서 남원에서 순창 가는 24번 국도를 따라 비홍치로 향했다.    


비홍재 정상에 도착하여 도로변 공터에 차량을 주차시켜 놓고 11:10에 걷기 시작했다. 비홍치에서 문덕봉-고리봉-약수정사로 이어지는 산 능선은 남원시 주생면, 금지면, 대강면 등 3개면에 걸쳐 12.8km의 긴 구간으로 뻗어있다.


출발지에서 문덕봉까지는 4km로 비교적 소나무 숲이 많고 등산로도 아주 좋은 편이어서 나는 두 번째였지만 처음 간 집사람은 참 좋다며 다음에 또 오자고 하였다. 아주 맑은 날씨였지만 그늘진 골짜기에는 아직 눈이 녹지 않아 얼룩말을 보는 듯 하였고, 북쪽에서 불어오는  약한 바람 때문에 등산을 하다 멈춰서 조금오래 쉬면 땀이 식어 약간 추위를 느끼는 날씨로 등산하기에는 아주 좋은 날씨였다.


1시간 40분정도를 걸어 해발 598.1m의 문덕봉에 도착하니 멀리 아름다운 지리산 노고단과 만복대, 정령치 등이 한눈에 들어오고, 지리산 줄기인 견두산 능선도 훤히 보이고, 우측엔 대강면 좌측엔 주생면과 금지면에 펼쳐진 들판들이 한눈에 들어왔다. 정상에는 폭신폭신한 잔디밭이 있어 신문지 한 장 깔고 식탁삼아 집사람과 마주앉아 준비해간 김밥으로 점심을 해결했다. 산행을 하면서 먹는 김밥은 왜 그렇게도 맛이 있는지 모른다.


문덕봉에서 그럭재까지 가는 3.5km의 등산로는 암반으로 이루어진 곳들이 많아  유격 훈련을 하듯 밧줄을 잡고 내려가기도 하고 올라가기도 하는 구간이 여러 군데 있어서 상당히 힘든 코스였다. 집사람은 문덕봉 오기 전까지와는 다르게 생각이 바로 바뀌어 다음에는 절대로 오지 않겠다고 했다. 나도 몇 십 미터 아래 절벽을 바라보면서 난간대 하나 없는 고래등 같은 암반 위를 걸을 때는 상당히 조심스러웠고 산을 너무 좋아하다 정말 아주멀리 가는 것은 아닐까 하는 두려움도 있었다. 그럭재에 도착하여 문덕봉을 바라보니 암벽으로 이루어진 산들이 병풍처럼 펼쳐져 있는 것을 보고 어떻게 우리가 저기를 내려 왔는가 하는 생각을 들게 하였다.  


그럭재에서 휴식을 취하면서 처음에 계획한대로 금지면 서재마을로 하산을 할까 하다가 출발한지 3시간밖에 소요되지 않아 능선길로 2.5km 더 가면 고리봉이 있다는 이정표를 보고 고리봉을 향하여 가기로 했다. 오르막과 내리막길 연속인 마치 지리산 주능선을 종주하는 듯한 느낌이 들었고 그럭재에서 고리봉 까지 가는 등산로는 이정표에 표시된 거리보다 조금 멀게 느껴졌지만 그날 걸었던 능성 종주 중에 가장 높은 해발 708.9m의 고리봉 정상을 향하여 가는 것은 바로 희망을 향해서 가는 것이었다.


오랜 시간 걷다보니 집사람이 장단지가 약간 아프다고 하여 쉴 때 마다 내가 다리를 주물러 주자 “성훈 아빠는 귀찮지도 않대?” 하면서 묻기에 나는 “뭐가 귀찮아. 우리가 이렇게 걸을 수 있다는 것이 행복한 것이지.”하고 말하면서 계속 다리를 주물러 주자 집사람은 “나는 늙어서 우리가 그렇게 열심히 등산을 다녔었다고 이야기 할 수 있는 추억을 남기려고 걷는 거야.”하고 말하였다. 우리는 그렇게 추억을 만들고 있었다.  


그럭재에서 고리봉까지 가는 구간에도 밧줄을 잡고 가야 하는 곳이 여러군데 있고 위험한 구간도 있어 정상까지 가더라도 뒤로 돌아오다가 금지면 방촌마을로 내려가는 등산로로 가고 싶은 생각이 사라져 버려대강면 약수정사로 하산을 하기로 마음먹고 험난한 코스를 오르다보니 드디어 4시간 50분만에 고리봉에 도착을 하였다.    


고리봉에서 우리가 걸어왔던 능선을 바라보니 구름이 끼어 문덕봉까지만 희미하게 보이고 비홍치는 아예 보이지도 않았다. 정상에서 사방팔방을 바라보는 그 쾌감 또한 말할 수 없이 좋았다.  우리가 진행하던 방향의 산 아래에는 유유히 흐르는 섬진강 물줄기가 보이고 강 건너 에는 다음에 찾아오라고 손짓하며 장엄하고 아름다운 자태로 곡성의 동악산이 서있었다.  


아끼고 아껴가며 남겨 놓았던 물을 꺼내어 목을 축이고 대강면 약수정사 계곡로를 향하여 하산을 하였는데 하산 길은 처음 가는 길이었지만 편안한 등산로였다. 약수정사에 도착하니 오후 6시 40분이었고 어느새어둠이  내려앉고 있었다.  지리산 종주 코스보다도 훨씬 힘든 7시간 30분 동안의 등반을 했다는 것이 아직 우리는 젊다는 사실에 기쁨이 가득할 뿐이었다. 그리고 남자들도 종주하기에 상당히 험난한 코스를 같이 동행한 집사람이 겁나게 고마웠다. 멈추지 않는 나의 발길은 앞으로도 또 산으로 산으로 향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