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마음엔 영원히 자라지 않는 내면아이가 있다 / 그때, 나에게 미처 하지 못한 말
새로운 사람을 만났을 때, 문득 이런 질문을 받고 당황할 때가 있다. “패밀리가 누구예요?”, “문단에서 주로 친하게 지내는 사람들이 누구예요?” 사람들은 ‘누가 누구와 친한가’를 그 사람의 판단 준거로 삼으려 한다. 여기서 패밀리란 혈연 상의 가족이 아니라 ‘항상 의견을 나누고 친하게 지내는 사람들’을 말한다.
그런데 나는 ‘패밀리’라 할 만한 사람이 없다. 나는 이럴 때 당황하지만 솔직하게 대답한다.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사람들은 많지만, 패밀리는 없다고. 그러면 상대방은 ‘참 이상한 사람이다’라는 표정을 짓는다. 내가 ‘판단하기 어려운 사람이다’라는 인상을 주는지도 모르겠다.
그래도 나는 괜찮다. 어떤 거대한 전체 속의 부분이 되고 싶었던 때도 있었다. 나보다 더 멋진 사람들, 더 훌륭한 사람들과 어울리고 싶은 욕구도 있었고. ‘누군가의 패밀리가 되어야 하지 않을까’ 하는 조바심도 느꼈다. 하지만 지금은 ‘관계’란 오직 일대일로 맺는 것이지 어떤 모임이든 ‘조직적’으로 움직여서는 안 된다고 생각한다. ‘저 사람은 누구 패밀리야. 그 사람들이랑 어울려 다녀’라는 평가를 듣고 싶지 않다.
나는 누군가를 많이 좋아하더라도, 그 감정을 굳이 내비치지 않으려고 노력한다. 어디선가 내비쳤다면, 내가 미성숙해서다. 좋아하는 감정을 숨기는 데 서툴기 때문이다. 나는 누군가의 후배나 친구나 선배일 수도 있지만 그런 관계 때문에 판단을 그르치지 않기 위해 조심한다. 그를 좋아한다는 이유로 공정하지 못한 판단을 내리지 않도록 신중해야 하기 때문이다.
가족에게 모든 것을 상의할 수도 없다. 가족들은 나와 전혀 다른 삶을 살아가고 있기에. 그러다 보니 어떤 중요한 일을 결정해야 할 때 무척 외로워진다. 어려운 선택이 있을 때 상의하기 위해 전화할 사람도 없다. 전화하고 싶은 사람이 있어도, 일부러 참는다. 오직 내 판단을 믿는다. 그러다 보니 처절한 외로움을 느낄 때가 하루에도 수십 번이다.
때로는 혼자 결정을 내려놓고 나중에 다른 사람에게 이런 핀잔을 듣기도 한다. “그때 나한테 좀 물어보지 그랬냐. 내가 잘 코치해줬을 텐데.” 그럴 때 나는 활짝 웃으며 혼잣말로 속삭인다. ‘그럼 다른 사람에게 의지하는 거잖아요. 누군가의 코칭 없이도 혼자 결정하고 싶어요’.
이 상태를 오래 지속하다 보니 나를 믿는 힘과 판단력이 생겼다. 언젠가 내가 그 누구의 판단에도 휘둘리지 않을 정도로 단단해지면, 그땐 누군가와 상의하는 일을 두려워하지 않을 것 같다. 하지만 아직 나는 매일 ‘마음’이라는 것을 만들어가는 중이다. ‘나’라는 존재가 촉촉한 찰흙 덩이처럼 매일 빚어지는 존재라는 것을 매번 느끼는 요즘이다.
이렇게 ‘혼자 결정하는 연습’을 하면서 나는 점점 나다워지고 있다. 가끔은 실수해도 괜찮다. 실수를 통해 무언가 깨닫는 점이 훨씬 많음을 이제는 알기에. 신앙이나 미신이나 친분에 의지하지 않고, 오직 자신의 지성과 의지로 어려운 일을 결정할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다.
물론 그런 결정을 내리기 위해 수많은 자료를 참고하고, 나 자신의 과거, 현재, 미래를 차분히 성찰한다. 혼자 고민하고, 혼자 방황하고, 혼자 결정하는 남들을 통해 점점 담담하고 차분한 사람이 되어가는 게 좋다. ‘아무도 없다’고 생각될 때, 오히려 진정 강해지는 나를 발견할 수 있기에.
헬리콥터맘, 캥거루족이라는 유행어는 ‘성인이 된 자식에게 여전히 집착하는 엄마’와 ‘성인이 되어서도 독립하지 못하는 자식’의 대명사가 되었다. 그런데 이것은 단지 경제적인 독립을 하지 못한 자녀들의 문제에 그치지 않는다. 자기 문제를 스스로 해결하지 못하고 점집을 드나들거나 ‘감 놓아라 배 놓아라’ 하는 주변 사람들의 참견에 의존하는 사람은 평생 ‘자기 자신’이 되지 못한다. 그런 사람들은 고독을 견디지 못하는 나약함으로 평생 정신의 독립을 이루지 못하고 끊임없이 물의를 일으킨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떻게 정신의 독립, 정서적 독립을 이룰 수 있을까.
처음으로 ‘나만의 방’을 구해 보모로부터 독립한 날, 나는 ‘드디어 해방되었다’는 생각과 함께, ‘앞으로 어떻게 살아야 하나?’ 하는 걱정이 밀려들었다. 그리고 그날, 마치 약속이라도 한 것처럼 ‘정전’이 되었다. 내가 얻은 월세방만이 아니라 거리 전체가 정전이 된 것이다. 촛불도 없고 랜턴도 없었다.
나는 일단 무서움을 무릅쓰고 터벅터벅 밖으로 나갔다. 거리가 온통 어두우니 내가 마치 ‘이상한 나라의 폴’이 된 것 같았다. 시간이 멈춘 느낌마저 들었다. 멀리 큰길 건너편을 바라보니 다행히 불빛이 보였다. 나는 길을 건너 불이 켜진 첫 번째 편의점에 들어가 양초를 샀다. 단지 ‘양초’가 아니라 마치 ‘어둠을 밝히는 희망’을 구하는 느낌이었다.
버지니아 울프가 여성의 진정한 독립을 위해 필요하다고 말한 ‘자기만의 방’을 드디어 얻은 첫날, 내게 가장 필요한 것은 어떤 화려한 실내장식 소품도 아닌 소박한 ‘촛불’이었다. 촛불을 켜놓고 방 안에 들어앉으니 외로움을 오래오래 참을 수 있을 것 같았다.
홀로 있어도 더없이 기쁜 곳, 홀로 있어도 무한한 행복을 느끼는 곳, 이제 다시는 되돌아 나와 ‘속세의 즐거움’ 속으로 내려오기 힘든 곳, 누구에게나 그런 마음의 쉼터가 필요하다. 마음 깊은 곳의 고독이 쉴 수 있는 곳, 외로움을 참고 자신만의 작은 세계를 창조할 수 있는 고즈넉한 내면의 장소가 필요하다.
항상 자신의 일을 모두가 대리해서 처리해주는 사람들은 겉으로는 엄청난 권력자로 보이지만 정작 자신의 일을 스스로 해내지 못하는 꼭두각시에 불과하다. 갑의 위치에 있지만 을보다도 못한 사람들이 이 세상을 너무 많이 망치고 있다. 그들에게 고독할 수 있는 자유, 고독을 통해 진짜 성인이 되는 시간을 보내주고 싶다.
막상 혼자가 되었을 때 가장 먼저 밀려드는 감정은 무력함이다. 그토록 원하던 혼자가 되었으나 두려움이 앞설 것이다. 하지만 그 순간이 바로 위기이자 기회다. 우리 마음속에 영원히 자라지 않는 내면 아이와 작별할 시간이다.
글 출처 : 그때, 나에게 미처하지 못한 말(정여울, arte) 中에서
그런데 나는 ‘패밀리’라 할 만한 사람이 없다. 나는 이럴 때 당황하지만 솔직하게 대답한다.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사람들은 많지만, 패밀리는 없다고. 그러면 상대방은 ‘참 이상한 사람이다’라는 표정을 짓는다. 내가 ‘판단하기 어려운 사람이다’라는 인상을 주는지도 모르겠다.
그래도 나는 괜찮다. 어떤 거대한 전체 속의 부분이 되고 싶었던 때도 있었다. 나보다 더 멋진 사람들, 더 훌륭한 사람들과 어울리고 싶은 욕구도 있었고. ‘누군가의 패밀리가 되어야 하지 않을까’ 하는 조바심도 느꼈다. 하지만 지금은 ‘관계’란 오직 일대일로 맺는 것이지 어떤 모임이든 ‘조직적’으로 움직여서는 안 된다고 생각한다. ‘저 사람은 누구 패밀리야. 그 사람들이랑 어울려 다녀’라는 평가를 듣고 싶지 않다.
나는 누군가를 많이 좋아하더라도, 그 감정을 굳이 내비치지 않으려고 노력한다. 어디선가 내비쳤다면, 내가 미성숙해서다. 좋아하는 감정을 숨기는 데 서툴기 때문이다. 나는 누군가의 후배나 친구나 선배일 수도 있지만 그런 관계 때문에 판단을 그르치지 않기 위해 조심한다. 그를 좋아한다는 이유로 공정하지 못한 판단을 내리지 않도록 신중해야 하기 때문이다.
가족에게 모든 것을 상의할 수도 없다. 가족들은 나와 전혀 다른 삶을 살아가고 있기에. 그러다 보니 어떤 중요한 일을 결정해야 할 때 무척 외로워진다. 어려운 선택이 있을 때 상의하기 위해 전화할 사람도 없다. 전화하고 싶은 사람이 있어도, 일부러 참는다. 오직 내 판단을 믿는다. 그러다 보니 처절한 외로움을 느낄 때가 하루에도 수십 번이다.
때로는 혼자 결정을 내려놓고 나중에 다른 사람에게 이런 핀잔을 듣기도 한다. “그때 나한테 좀 물어보지 그랬냐. 내가 잘 코치해줬을 텐데.” 그럴 때 나는 활짝 웃으며 혼잣말로 속삭인다. ‘그럼 다른 사람에게 의지하는 거잖아요. 누군가의 코칭 없이도 혼자 결정하고 싶어요’.
이 상태를 오래 지속하다 보니 나를 믿는 힘과 판단력이 생겼다. 언젠가 내가 그 누구의 판단에도 휘둘리지 않을 정도로 단단해지면, 그땐 누군가와 상의하는 일을 두려워하지 않을 것 같다. 하지만 아직 나는 매일 ‘마음’이라는 것을 만들어가는 중이다. ‘나’라는 존재가 촉촉한 찰흙 덩이처럼 매일 빚어지는 존재라는 것을 매번 느끼는 요즘이다.
이렇게 ‘혼자 결정하는 연습’을 하면서 나는 점점 나다워지고 있다. 가끔은 실수해도 괜찮다. 실수를 통해 무언가 깨닫는 점이 훨씬 많음을 이제는 알기에. 신앙이나 미신이나 친분에 의지하지 않고, 오직 자신의 지성과 의지로 어려운 일을 결정할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다.
물론 그런 결정을 내리기 위해 수많은 자료를 참고하고, 나 자신의 과거, 현재, 미래를 차분히 성찰한다. 혼자 고민하고, 혼자 방황하고, 혼자 결정하는 남들을 통해 점점 담담하고 차분한 사람이 되어가는 게 좋다. ‘아무도 없다’고 생각될 때, 오히려 진정 강해지는 나를 발견할 수 있기에.
헬리콥터맘, 캥거루족이라는 유행어는 ‘성인이 된 자식에게 여전히 집착하는 엄마’와 ‘성인이 되어서도 독립하지 못하는 자식’의 대명사가 되었다. 그런데 이것은 단지 경제적인 독립을 하지 못한 자녀들의 문제에 그치지 않는다. 자기 문제를 스스로 해결하지 못하고 점집을 드나들거나 ‘감 놓아라 배 놓아라’ 하는 주변 사람들의 참견에 의존하는 사람은 평생 ‘자기 자신’이 되지 못한다. 그런 사람들은 고독을 견디지 못하는 나약함으로 평생 정신의 독립을 이루지 못하고 끊임없이 물의를 일으킨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떻게 정신의 독립, 정서적 독립을 이룰 수 있을까.
처음으로 ‘나만의 방’을 구해 보모로부터 독립한 날, 나는 ‘드디어 해방되었다’는 생각과 함께, ‘앞으로 어떻게 살아야 하나?’ 하는 걱정이 밀려들었다. 그리고 그날, 마치 약속이라도 한 것처럼 ‘정전’이 되었다. 내가 얻은 월세방만이 아니라 거리 전체가 정전이 된 것이다. 촛불도 없고 랜턴도 없었다.
나는 일단 무서움을 무릅쓰고 터벅터벅 밖으로 나갔다. 거리가 온통 어두우니 내가 마치 ‘이상한 나라의 폴’이 된 것 같았다. 시간이 멈춘 느낌마저 들었다. 멀리 큰길 건너편을 바라보니 다행히 불빛이 보였다. 나는 길을 건너 불이 켜진 첫 번째 편의점에 들어가 양초를 샀다. 단지 ‘양초’가 아니라 마치 ‘어둠을 밝히는 희망’을 구하는 느낌이었다.
버지니아 울프가 여성의 진정한 독립을 위해 필요하다고 말한 ‘자기만의 방’을 드디어 얻은 첫날, 내게 가장 필요한 것은 어떤 화려한 실내장식 소품도 아닌 소박한 ‘촛불’이었다. 촛불을 켜놓고 방 안에 들어앉으니 외로움을 오래오래 참을 수 있을 것 같았다.
홀로 있어도 더없이 기쁜 곳, 홀로 있어도 무한한 행복을 느끼는 곳, 이제 다시는 되돌아 나와 ‘속세의 즐거움’ 속으로 내려오기 힘든 곳, 누구에게나 그런 마음의 쉼터가 필요하다. 마음 깊은 곳의 고독이 쉴 수 있는 곳, 외로움을 참고 자신만의 작은 세계를 창조할 수 있는 고즈넉한 내면의 장소가 필요하다.
항상 자신의 일을 모두가 대리해서 처리해주는 사람들은 겉으로는 엄청난 권력자로 보이지만 정작 자신의 일을 스스로 해내지 못하는 꼭두각시에 불과하다. 갑의 위치에 있지만 을보다도 못한 사람들이 이 세상을 너무 많이 망치고 있다. 그들에게 고독할 수 있는 자유, 고독을 통해 진짜 성인이 되는 시간을 보내주고 싶다.
막상 혼자가 되었을 때 가장 먼저 밀려드는 감정은 무력함이다. 그토록 원하던 혼자가 되었으나 두려움이 앞설 것이다. 하지만 그 순간이 바로 위기이자 기회다. 우리 마음속에 영원히 자라지 않는 내면 아이와 작별할 시간이다.
글 출처 : 그때, 나에게 미처하지 못한 말(정여울, arte) 中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