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대, 간이역에 가보셨나요 급행열차는 서지 않았다. 없는 듯 서있다가 이별의 시간에만 솟아올랐다. 기적은 목이 메었다. 누구는 공부하러, 누구는 돈 벌러, 누구는 원수를 갚으러… 누구는 빚에 쫓겨, 누구는 사랑에 쫓겨, 누구는 일에 쫓겨 기차를 탔다. 기차를 탄다는 것은 한 세상을 버리고 다른 세상 속으로 들어가는 일이었다. 떠난다는 것은 두려움이었고, 그래서 기차는 괴물 같았다. 바쁜 것들, 잘난 것들 다 먼저 보내고 완행열차는 제 시간보다 늘 늦게 도착했다. 그러면 이별의 순간도 늦게 왔다. 이별도 제 시간을 벗어나면 볼품이 없어진다. 이별도 지친다. 이별도 맥이 빠진다. 울음도 인사말도 다 때가 있다. 간이역은 그래서 때를 놓친 사람들을 서성거리게 만들었다. 간이역에는 시간이 멎어있다. 사람들은 시간 속으로 빨려들어갔다. 저 간이역을 세상의 출구로 알았던 사람들은 어디로 갔을까? 간이역의 추억은 누구의 기억 속에 아직 숨쉬고 있을까? 그때 주먹쥐고 두려움에 떨면서 떠나갔던 사람들은 어디서 무엇이 되었을까. 열차를 기다리는 사람들이 사라진 자리가 서늘하다. 이제 간이역은 이름마저 잊혀져간다. 사랑하는 사람 얼굴을 떠올리며 하루종일 열차를 기다렸던 그 간절함은 어디로 옮겨갔을까? 기억되려고, 잊혀지지 않으려고 대합실보다 역 이름을 더 크게 달고있는 간이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