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비 오던 날 산 길에서.....

    어제........
    비가 오는데도 집을 나섰습니다.

    결심만 매 번하고....그깟거 하나 못 지키랴 싶어서
    동네 얕은 산이지만 일 주일에 세번은 가자고 맘 먹은거
    그거라도 지켜야지.....하며 산에 올랐습니다.

    시작하니.....되더군요.
    쉬지 않고 중턱까지 오르는 동안 흐르는 땀과 비가 벌써
    온 몸을 흠뻑 적셔주더군요.
    비에 젖은 몸이 무겁기는 커녕 오히려 기분은 더 상쾌했습니다.

    산에 오르는 내내 머릿속엔 한가지 생각이 맴 돌았습니다.
    중년이란 나이가 주는 물음에 무슨 답이 좋을까?
    답이란 알려들면 더 꼬릴 감추는 법....
    그냥 얕은 나무들위로 떨어지는 빗 소리를 들으며
    무심하게 발만 내려다보며 걷다가.....문득 굵어진 빗물이
    좁은 산 길에도 골을 찾아 흘러내리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습니다.

    이 작은 산에도 사방 팔방으로 저런 빗 길이 있는거로구나....
    누가 가르쳐주지 않아도 저 빗 물들은 제 갈길을 저렇게 찾아 가는구나...
    가는 길은 서로 다 다를테지만 흘러간 흔적들은 저마다 남기고 가겠지.
    흐르다가 사나운 바위를 만나 멈칫할 때도 있겠지만 참고 기다리면...
    바위를 돌아 나가 다시 또 제 갈길을 흘러가게 되겠지
    어떤 빗물은 굵고 깊게 자욱을 남기겠지만
    어떤 자욱은 눈에 띠지도 않을 수도 있을거야.
    하지만 큰 자욱이든 작은 자욱이든 다를건 없겠지.
    그 비도 저 비도 아래로 흘러내릴 수 밖에 없는건 마찬가지니까...

    저 빗 물들은 산 밑에서 다들 만나게 되겠지.
    모여서 더 큰 물줄기를 만들겠지.
    그리곤 바다로 흘러갈거야.
    저 들의 고향인 바다로....

    비를 맞으며 걷던 산 길에서...
    오래동안 잊고 지내던 이를 만났습니다.
    정말 까마득히 오랜 세월 잊고있었는데....
    문득 그 이를 발견하고 흠칫 놀랐습니다.
    잠시동안 서로 물끄러미 쳐다보다가...
    우린 같이 산 길을 걸었습니다.
    서로 안부를 묻지도 않았습니다.
    묻지 않아도 서로 어찌 지냈는지를 너무나 잘 알기에...
    그렇게 반가운 마음을 눈 빛으로만 주고 받으며
    말 없이 산을 올랐습니다.

    먼저 말 문을 연건......저 였습니다.
    괜시리 그 이가 저를 무시한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온갖 구실과 핑계를 대기도하고.....이제서야 내 앞에 나타난 그 이를
    탓하기도 하며 혼자 악을 써 댔습니다.
    그런 저를 그 이는 말 없이 바라보기만 하다가....
    슬며시 웃음 지으며 산 꼭대기를 가리켰습니다.

    그래...아직 우린 산 중턱을 조금 지났을 뿐인데......
    여기서 서로 누구 탓을 할 필요는 없겠지......
    우리에겐 아직 오를 산 길이 저 만큼 남아 있는데....
    이제까지 묵묵히 비를 맞으며 올라온 이 길을 또 그렇게 올라가야지.
    산 길 따라 흘러내리는 저 빗물도 산 밑에선 모두 만나듯...
    이 길을 오르다 보면 저 이도 만나고 또 다른 친구들도 만나게 될거야.

    우린 빗 속에서 서로의 얼굴을 쳐다보며 씨익 웃었습니다.
    그렇게 손을 맞 잡고 걷다보니 비에 젖은 풀들도 크고 작은 나무들도
    모두가 내 친구들이었습니다.
    산은 여전히 어제와 다름없는 산 이었고 내가 그 산길에서 만난건
    늘 내곁에 있었지만 내가 애써 외면하던 또 다른 나였습니다.
    그 이는 사실 부끄러운 내가 아니라 나와 같이 손을 잡아주고
    힘 든 바위를 만날 때 밀어주고 당겨줄 내 친구였습니다.

    산 꼭대기에선 빗 줄기가 더 거세어졌습니다.
    비 안개가 가득한 산 허리를 내려다 보며...
    모자와 웃 옷을 벗어던지고 하늘을 쳐다보며 비를 맞았습니다.
    굵은 빗 줄기가 얼굴을 때렸지만.....알 수없는 쾌감이 몰려왔습니다.
    우린 거기서 헤어졌습니다.
    그 이는 언제든 다시 산에 오를 땐 만나게 될거라며 제 등을 밀어주었습니다.

    내려오는 길에 멀리서 뻐꾸기 소리가 들렸습니다.
    괜시리 그 이가 나에게 잘 내려가라 하는 인사처럼 들렸습니다.
    무심히 뻐꾸기 소리를 흉내 내었더니....잠시 후
    저 멀리서 울던 뻐꾸기 소리가 내 머리위에서 들렸습니다.
    오호~~그럴 수도 있는 일이겠지만 어린아이 마냥 신기했습니다.
    산 길을 다 내려와 동네 어귀에 이를 때 까지
    내 주위에서 노래하던 뻐꾸기 소리가 들리지 않자
    저는 등산을 한게 아니라 꿈을 한 편 꾼것같은 생각이 들었습니다.

    우린 이 곳에서 그렇게 문득 친구를 만나는 것인지도 모릅니다!



Patoma - Haris Alexiou(raining versio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