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한복음과 함께(3)!

                            

“그분은 태초에 하나님과 함께 계셨습니다.” 

어제는 말씀이 하나님이시고 하나님이 말씀이시다 
라는것까지 살폈습니다. 잘 이해가 안되지요? 이렇게 말하는 
저도 사실은 이해가 완전한 것은 아닙니다. 어렴픗이 이해가 
안되지만 이해가 되는것 이런느낌을 경험하게 됩니다. 

어떻게 부족한 인간이 신적인 존재를 이해할 수 있을까요? 
만일 우리가 그런 존재(하나님 신적존재 초월자 전능하신 자)를 
이해할 수 있다면 그런존재는 이미 우리의 신앙의 대상이 될수가 
없지요. 나는 내가 이해하고 납득이 가야 믿겠다는 분들이 많습니다. 
눈으로 보고 느끼고 만져봐야 믿겠다는 것입니다. 
그런 자세는 좋습니다. 

하지만 과연 세상이 눈으로 본다고 진실이 아니듯이 특별히 믿음이나 
신앙은 보이는 것이 아닙니다. 보이지 않는 영이신 하나님을 믿는것
이라서 애당초 불가능한 것입니다. 

우리 기독교인들이 하나님을 믿는다는 그  믿음이 원래 불가능한 
것입니다. 그러면 지금 믿음을 삶의 원천으로 삼는 신자들은 다 정신 나간 
사람들인가요? 앞으로도 계속 반복이 되겠지만 기독교에서 말하는 
“구원”이라는 것이 그러니까 인간의 인식이나 행위로서는 불가능한 
것이라는 이야기입니다. 전도를 할 때 어떤분들이 저에게 이렇게 
요구를 합니다. 

  “나에게 하나님을 설명해 봐라! 나를 설득해 봐라! 그러면 믿겠다” 

이런분들은 나름대로 성경도 알고 기독교에 대한 정보를 알고 있습니다. 
특히 너희들이 말하는 것의 헛점을 알고 있으니 해볼테면 해 봐라는 식이죠. 
이럴때는 조용히 물러나는게 상책이죠. 이미 완강하게 마음의 빗장을 
걸어놨기에 안됩니다. 하나님께서 그 영혼을 불쌍히 여겨주실 때까지 
기다려야죠. 

하나님을 우리는 이해할 수가 없습니다. 
이해할 수 없다고 믿을 수가 없을까요? 세상에 보면 이해할 수 없는일이 
참 많습니다. 이해할 수 없는 관계도 많지요. 예를 들자면 사랑을 이해 할 수 
있을까요?  사랑이 눈에 보이나요? 손에 잡히나요? 그래도 우린 사랑을 믿지요? 
믿을 수 없는 사랑을 믿습니다. 그런다고 사랑때문에 울고 우는 그들을 
정신나갔다고 단정할 수 없지요? 

성경을 읽어보면 믿을 수 없고 말도 안되는 사건들이 많이 나옵니다. 
이해할 수 없는 기록들도 너무 많습니다. 그러나 그런 모든것들을 접어두고 
정작 신앙의 대상이신 하나님을 이해하기란 불가능하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믿음이 가능한가요? 

바로 그것이 신비입니다. 성경은 한결같이 증언하기를 
하나님의 은혜 혹은 은총이라고 합니다. 하나님으로부터 주어진 
선물이라는 이야기죠. 이것 역시 설명도 안되고 이해도 안됩니다. 
그저 감사할 뿐입니다. 

오늘 요한 사도는 바로 그 이해할 수 없는 하나님과 말씀이 함께
계셨다는 것을 말하고 있습니다. 그 말씀이 언제부터 하나님과 함께 
계셨는가를 이렇게 말합니다. 

      “그분은 태초에 하나님과 함께 계셨습니다.” 

말씀이 태초에 하나님과 함께 계셨다는 것입니다. 그 아득하고 
끝이없는 영원전부터 함께 하셨다는 것입니다. 또 아찔해 집니다. 
영원하신 하나님과 함께하시는 또다른 존재가 말씀이랍니다. 
말씀이 눈에 보입니까? 손에 잡혀 질까요? 우리가 인식할 수 있나요? 

요한의 말은 지금 영원하신 하나님과 동등한 존재가 있었는데 
그 존재가“말씀”이시다 라는 것입니다. 모든 만물이 창조된 것이라고 
했을때 말씀은 창조된 것안에 없다는 것입니다. 바로 창조주와 같이 
계셨다는 의미입니다. 

이스라엘은 오직 여호와 하나님을 유일하신 하나님으로 믿는 
민족입니다. 요한은 그 유대인들에게 하나님과 동일하신 존재가 
계시다를 지금 선언하고 있습니다. 

이 글을 읽을 유대인들의 놀라움을 상상할 수 있을까요? 
감히 입에 담을 수도 없는 ‘신성 모독’ 에 해당하는 엄청난 
발언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처음 교회에 나온 초신자들이 당황하는부분도 이런것입니다. 
대부분 교회 하면 하나님을 알고 있습니다. 말을 들어서 알고 있지요. 
저도 그랬으니까요. 교회를 믿는다는 것은 곧 하나님을 믿는다라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막상 어느정도 시간이 흐르면 하나님뿐 아니라 
예수님이 나오고 성령님이 들립니다. 참 막막하지요? 
유대인들보다야 그 충격이 덜하겠지만 ‘이거 뭐야?’ 하면서 약간 틈이 
생깁니다. 

어찌됐든지 요한은 주저함없이 자신의 생각을 밀어 부치네요. 
애초부터 확실하게 집고 넘어가야 할 필요가 있었겠지요. 그래서 
강력하게 작정을 하고 밀어부치는 것입니다. 정신을 차릴 여유를 두지 
않고 진행합니다. 

하나님과 동등하신 말씀이 영원전에 하나님과 함께 계셨다는 
것입니다. 지금 ‘경천 동지’ 할 비사를 누설하고 있습니다. 
이런 속 ‘천기 누설’을 과연 성경이 아니라면 또 어디에서 들을 
수 있겠습니까? 

여러분은 지금 엄청난 복을 누리는 사실을 
혹시 알고 계시나요? 

      “그분은 태초에 하나님과 함께 계셨습니다.” 


     오늘은 여기까지입니다. 모두 평안하소서! 

    내일 또 계속합니다. 
 

by 작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