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1001.jpg
    오늘은 멀리 알라바마주 버밍햄을 갔었습니다. 오랜만에 혼자 하는 여행길이라 맘껏 음악도 듣고 상념에 잠기며 호젓이 다녀왔습니다. 돌아오는 길에는 집 근처의 블럭버스터 비디오 전문점에서 영화를 하나 빌렸습니다. 한국을 다녀온 뒤 무척이나 바쁘게 지내왔고, 인터넷을 알고 난 후로는 드라마나 영화를 잘 보지 못하지만 오늘은 모처럼 영화 한 편 보기로 마음먹었지요. “ Marvin's Room ” 이라는 영화인데 젊은 여인네들의 마음을 설레이게 하는 ‘ 레너드 디카프리오 ’, ‘ 다이안 키튼 ’ (옛날부터 제가 참 좋아하던 여배우였습니다), 그리고 “ 소피의 선택 ” 에서 열연했던 연기파 여배우 ‘ 메릴 스트립 ’ 이 나오는 영화입니다. 이 정도면 화려한 캐스팅이라고 해도 되겠지요. 이름이 화려한 만큼 맡은 역을 출중하게 소화해내고 있습니다. “ 터미네이터 ”와 “ 메트릭스 ” 그리고 “ 스타워즈 ”와 같은 액션과 SF물에 열광하는 미국사람들에게는 신파조의 영화로 생각되어 흥행에는 실패한 것 같습니다. 이 영화는 20여 년간 연락을 두절하고 살아가던 두 자매의 이야기입니다. 병들어 식물인간처럼 누워 지내는 아버지와 정신질환이 있는 숙모를 간호하며 평생 처녀로 늙어가는 언니역은 ‘ 다이안 키튼 ’ 이 맡았습니다. 남편과 헤어져 말썽꾸러기 큰 아들(디카프리오)과 책벌레 작은 아들을 혼자 키우면서 미용전문가의 꿈을 키워가는 동생역은 ‘ 메릴 스트립 ’이 능청스럽게 맡은 역을 소화하고 있습니다. 평화롭던 플로리다의 작은 마을에 사는 언니의 가정에 병마가 찾아옵니다. 언니가 백혈병에 걸린 것이 드러나게 되고, 유일한 혈육인 동생에게서 골수를 이식 받고자 하면서 이야기는 전개됩니다. 오하이오에서 살던 동생이 언니의 전화를 받고 두 아들과 함께 플로리다에 가서 함께 생활하게 됩니다. 짧은 기간동안 벌어지는 코믹하지만 코끝을 시큰하게 하는 그들의 이야기는 가족간의 사랑과 갈등의 간격을 좁히지 못하고 있는 우리들의 마음을 움직이기에 충분할 만한 메시지를 주고 있습니다. 얼굴도 모르는 아버지에 대한 그리움을 반항과 탈선으로도 모자라 집에 불을 지르는 큰 아들(디카프리오). 비뚤어진 시각으로 자녀를 양육하면서도 전혀 문제점을 느끼지 못하던 어머니(메릴스트립). 두 모자간의 갈등은 전혀 다른 세상 사람처럼 살아가는 이모(다이안키튼)를 만나면서 변화의 전기를 맞게 됩니다. 그리고 자매간, 모자간 크게는 가족간의 사랑이 회복되어가는 과정을 보여줍니다. 이 영화는 “사랑 ”이라는 진부한 것 같은 소재를 우리가 어떻게 감당해야 하는지 간명하게 보여줍니다. 결국 골수이식을 할 수 없어 죽을 수 밖에 없는 상황에서도 언니는 절망하지 않습니다. 그저 하루가 어두워지고 다시 해가 뜨는 세상의 흐름 속에 자신은 잠시 지나가는 나그네라는 듯 초연하게 대처해 나가는 모습에서 진한 감동을 받게 됩니다. 죽음이라는 피할 수 없는 명제 앞에서 자매는 서로 다른 해석을 하게 됩니다. 맞이하느냐, 아니면 두려워하느냐... 절망할 수밖에 없는 상황에 처한 언니가 동생에게 말합니다. 그들(아버지와 숙모)이 자신을 사랑해서가 아니라, 자신이 세상에서 진정한 사랑을 줄 수 있었던 그들이 있었기에 행복했었노라고 말합니다. 그 순간 언니(다이안키튼)의 해맑은 미소는 혼탁한 이 세상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천사의 얼굴이었습니다. 죽음을 당당히 맞이하는 자의 여유라고 할까요. 죽음을 앞둔 언니가 아버지의 방에서 작은 거울을 들고 햇빛을 반사시키면서 아버지가 즐거워 하는 모습을 보며 행복해하는 장면으로 영화는 마무리 됩니다. 그 장면에서 또 다른 감동이 있습니다. 우리도 그들의 아버지처럼 천진한 마음으로 즐거워 하며 맞이해야 하지 않을까요. 또 한줄기의 빛을 받아 반사시키면서 방안 전체를 아름답게 수놓는 그녀의 모습에서 우리들은 이 세상을 그렇게 살만하고 아름다운 곳으로 바꿔 나가야 한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언제나 사랑을 받지 못해 안달하면서도 진정한 관심과 사랑을 주지 못하는 현대인들에게 잔잔하지만 따가운 침을 놓는 영화였습니다. 유행가의 가사처럼 “ 사랑은 주는 것 ” 이라는 평범하고 지극히 당연한 의무를 깨닫게 해주는 영화였습니다. 또 인간이라면 “죽음”이라는 피할 수 없는 우리의 미래에 대해 당당히 맞이할 수 있어야 한다는 분명한 확신과 메시지를 던지고 있는 것입니다. 이 영화를 울님 여러분 모두에게 권하고 싶습니다. 화면을 채우는 ‘ 다이안 키튼 ’ 의 환한 미소만으로도 영화를 볼 가치가 있습니다.
profil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