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노인으로 태어나 자궁으로 돌아가고파!
» 〈젊음의 유전자 네오테니〉
〈젊음의 유전자 네오테니〉론다 비먼 지음·김정혜 옮김/도솔·1만3000원

흰머리는 집요하지만 천천히 피어난다. 드문드문 새치에서 시작해 희끗희끗 귀밑을 파고들다 슬금슬금 정수리로 올라가며 중원을 장악한다.

은빛 중년이 자신의 변화된 모습을 인정하기까지는 시간이 필요한 탓일 게다.

함께 있는 젊은 여자 후배를 보고 누군가 무심코 “따님이 아빠를 많이 닮았네요”라고 말할때 그 한마디는 비수가 되어 가슴에 꽂힌다.

그래도 ‘목소리’는 희망이다. 수십년 전 아역 배우는 이젠 시어머니 배역으로 나와야 하지만 산울림의 김창완은 지금도 무대에서 애띤 목소리로 “언젠가 가겠지 푸르른 이 청춘~”을 노래할 수 있다. 공기라는 불변의 자연과 호흡하고 있는 덕분에 목소리는 좀처럼 늙지 않는 것일까?

주름살 제거나 복부 성형으로 세월의 흔적을 손보려는 것은 노란 단풍에 초록색을 칠하는 것처럼 덧없는 일이다. 생일이 더이상 반갑지 않은 인생 후반전에 들어서면 삶도 계절처럼 순환할 수 있으면 좋겠다는 욕심이 든다.

소설가 마크 트웨인은 인간이 80살로 태어나 18살로 점점 젊어진다면 삶은 더없이 행복해질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코미디언답게 조지 칼린은 삶의 역주행을 ‘조크’로 보여준다. 먼저 죽음이 있고 거기서 삶이 시작된다. 처음엔 노인요양시설에서 살던 중 너무 ‘젊어졌다’는 이유로 쫓겨나 일터로 간다.

그곳에서 은퇴해야 할 만큼 ‘어려질’ 때까지 일한 다음에는 고등학교에 입학한다. 초등학교를 거쳐 아이가 되어서는 놀기만 한다. 그러다가 마침내 엄마의 자궁으로 되돌아가 마지막 아홉 달을 보낸 뒤 ‘오르가슴’에 도달하며 생을 마감한다.

영생 아닌 불변의 젊음 꿈꾸는 사람들에게
인생상담가 저자 “내 안의 아이 깨워라” 처방
젊게 사는 10가지 비결의 불쏘시개는 ‘사랑’

중년을 위한 인생 상담가인 지은이 론다 비먼은 삶을 ‘성행위로 옮겨지는 치사율 100%의 질환’에 빗대면서 젊음의 유전자 ‘네오테니’(neoteny)로 거슬러 올라갈 것을 권유한다.

네오테니는 ‘유형 성숙’이라는 뜻의 생물학 용어인데 어른이 돼서도 어린이의 성질을 계속 간직하는 것을 말한다. 인류학자 애슐리 몬터규는 인간은 본디 신체·정신·감정·행동의 모든 측면에서 어린아이 같은 특성이 줄지 않고 오히려 두드러지는 쪽으로 성장한다고 말했다. 성인은 성적으로 성숙한 태아일 뿐이다. 피터 팬처럼 아이의 몸으로 성체가 되는 것이다.


» 노인으로 태어나 자궁으로 돌아가고파!

제우스를 찾아간 티토노스의 아내가 남편의 구원을 위해 영원한 ‘젊음’이 아니라 영원한 ‘생명’을 달라고 비는 바람에 티토노스는 죽지는 않고 끝없이 늙어만 가는 끔찍한 고통 속에 살게 된다.

 

네오테니는 영생이 아니라 불변을 말한다. 오늘날 교육과 사회제도가 어린이다움을 억압하면서 네오테니를 죽이고 있기 때문에 사람들은 젊음을 잃고 늙어간다.

 

네오테니를 발견한다는 것은 우리 안에 살아 있는 그 아이에게 다시 생명을 불어넣는 것이다. 네오테니의 관점을 되찾는 것은 특수안경을 끼고 핑크빛 세계관을 회복하는 것이기도 하다.

 

하버드대 심리학 연구팀은 80살 안팎의 남성들을 20년 전의 가구와 옷과 음식을 그대로 재현한 환경에서 며칠 동안 지내게 했다.

그 결과 노인들의 손놀림이 빨라졌고 기억력도 크게 향상되었다고 한다. 연구팀은 사람의 마음이 시간을 거스르도록 할 수 있다면 몸 상태도 과거로 돌아갈 수 있다는 결론을 내렸다.

이 책은 내 안의 어린이다움을 일깨우기 위한 10가지 젊어지는 습관을 제시하고 있다.

먼저 젊어지는 ‘생각’으로 △탄력성 △낙천성 △경이감 △호기심을 든다. 해안가에 참나무보다 야자수가 더 많은 것은 바람에 잘 휘어지는 탄력성 덕분이다.

젊어지는 ‘언어’에는 △기쁨 △유머 △음악이 있다. 나이를 먹는다고 웃지 않는 게 아니라 웃지 않기 때문에 나이를 먹는다. 웃음은 얼굴과 복부 근육에 아주 훌륭한 운동이다. 또 음악은 영혼을 목욕시키므로 우울증에 걸린 합창단원은 찾기 힘들다.

젊게 사는 ‘동력’으로는 △일 △놀이 △학습을 소개한다. 초등학교 때 쉬는 시간 종이 울리자마자 운동장에서 땀을 뻘뻘 흘리며 뛰어논 경험이 있을 것이다. 세상은 커다란 운동장이며 삶은 쉬는 시간에 만들어내는 온갖 놀이로 채워진다.

플라톤은 1년 동안 대화하는 것보다 한 시간 같이 놀면 상대를 더 잘 알 수 있다고 말했다.

젊게 사는 10가지 비결에 불을 당기는 건 단연 사랑의 묘약이다. 나이는 사랑을 막지 못하지만 사랑은 나이 드는 걸 막아준다. 사랑에 빠지면 우리 모두 어린이가 되기 때문이다.

 

한광덕 기자 kdhan@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