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정스님의 글 - 법정스님께서 남기신 글을 올립니다.

글 수 295
번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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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지 법정스님의 의자 1 file
오작교
2528   2022-08-06 2023-02-27 19:46
35 500생의 여우
오작교
287   2021-11-12 2021-11-12 20:59
산중에 짐승이 사라져 가고 있다. 노루와 토끼 본 지가 언제인가. 철 따라 찾아오던 철새들도 아직 감감무소식이다. 여느 해 같으면 지금쯤 찌르레기와 쏙독새, 휘파람새 소리가 아침저녁으로 골짜기에 메아리를 일으킬 텐데 그런 소리를 들을 수 없어 산과 ...  
34 별을 바라보면서
오작교
286   2021-11-13 2021-11-13 08:22
여름철 초저녁을 거의 뜰에서 지냈다. 방 안은 답답하고 불을 켜면 날벌레들이 날아들어 소란을 피우니까, 뜰에 돗자리를 내다 깔고 그 위에서 초저녁의 한 때를 지낼 수밖에 없었다. 방 밖에서 지낸 덕에 산마루에 떠오르는 달을 지켜보면서 어둠을 비추는 ...  
33 누가 이 땅의 주인인가
오작교
285   2021-11-12 2021-11-12 21:24
봄앓이를 치르면서 밥해먹기가 귀찮아 며칠 동안 여기저기 돌아다니다가 왔다. 한동안 방송이고 신문이고 듣지 않고 보지 않으니, 마음이 그렇게 맑고 투명하고 편안할 수가 없었다. 요 몇 해 동안 우리는 허구한 날 똑같이 소리 높이 외치고 점거농성하고 짓...  
32 들꽃을 옮겨 심다
오작교
283   2021-11-12 2021-11-12 20:48
오늘 아침 뒤꼍에서 개망초를 꺾어다가 오지항아리에 꽂았더니 볼만하다. 아니, 볼만하다가 아니라 볼수록 아주 곱다. 개망초는 산자락이나 밭두둑 어디서나 마주치는 흔한 꽃이다. 너무 흔하기 때문에 꽃 대접을 제대로 받지 못한다. 스치고 지나면서 눈여겨...  
31 우리는 너무 먹어댄다
오작교
282   2021-11-12 2021-11-12 21:23
오전 중에 청년 두 사람이 찾아왔었다. 절을 찾아오는 사람들이 흔히 말하듯이 그들도 좋은 말씀을 듣고 싶어 왔다고 했다. 나는 거두절미(去頭截尾)하고, 우선 그 좋은 말씀에서 해방되라고 일러주었다. 우리가 지금까지 얻어들은 좋은 말씀이 얼마나 많은가...  
30 연기와 재를 보면서
오작교
282   2021-11-12 2021-11-12 21:08
오늘 아침, 어제가지 받은 편지들을 부엌에 들어가 죄다 태웠다. 입춘도 지났으니 편지를 담아두었던 광주리도 텅 비워두고 싶어서였다. 굴뚝에서 편지 타는 연기가 피어오르는 걸 보면서 저것은 ‘말의 연기’로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아궁이에...  
29 어떤 주례사
오작교
282   2021-11-12 2021-11-12 20:52
며칠 전 한 친지가 느닷없이 자기 아들 결혼식에 나더러 주례를 서 달라고 했다. 유감스럽지만 내게는 ‘주례 면허증’이 없어 해 줄 수 없다고 사양했다. 나는 내 생애에서 단 한 번 처음이면서 마지막인 주례를 3년 전 6월 어느 날 선 적이 있다....  
28 운문사에 가면
오작교
282   2021-11-12 2021-11-12 20:45
내일모레면 서리가 내린다는 상강인데 오늘 이 산중에는 첫눈이 내렸다 가을이 채 가기도 전에 겨울이 성급하게 다가서는가. 오늘 내린 눈으로 뜰가는 온통 단풍나무 잎으로 낙엽의 사태를 이루었다. 요 며칠 동안 청명한 가을 날씨 덕에 남쪽에 내려가 오랜...  
27 연암 박지원 선생을 기린다
오작교
281   2021-11-12 2021-11-12 20:46
밖에 나가면 편지들이 나를 기다리고 있을 때가 있다. 어떤 편지는 그 자리에서 펼쳐 보고, 어떤 편지는 집에 가져와 차분히 읽는다. 첩첩산중 외떨어져 사는 나 같은 경우는 휴대전화가 판을 치는 요즘 같은 세상에서도 편지가 유일한 통신수단이다. 받은 편...  
26 얼음 깨어 차를 달이다
오작교
279   2021-11-12 2021-11-12 19:57
지난겨울 이 산중에서 온 몸과 마음으로 절절히 배우고 익힌 교훈은 한 방울 물의 귀하고 소중함이었다. 눈 고장에 눈이 내리지 않은 삭막한 겨울. 오죽했으면 태백에선가는 기설제(祈雪祭)를 다 지냈겠는가. 가뭄이 심할 때 기우제를 지내듯, 눈 고장에서는 ...  
25 차 덕는 향기
오작교
278   2021-11-12 2021-11-12 20:56
기온이 높고 습기가 많은 장마철은 차 맛이 떨어진다. 이 구석 저 구석을 정리하다가 까맣게 잊어버린 차 덖는 프라이팬을 찾아냈다. 자루에 ‘차 전용’이라고 표시까지 해 놓은 것이다. 떡 본 김에 제사 지낸다는 말도 있듯이 차 덖는 기구를 본 ...  
24 개울가에 얼음이 얼기 시작한다
오작교
277   2021-11-12 2021-11-12 20:54
11월을 아메리카 인디언들은 ‘모두 다 사라진 것은 아닌 달’로 불렀다. 평원에 들짐승들의 자취가 뜸해지고 수그러든다. 그렇지만 모두 다 사라진 것은 결코 아니다. 한동안 비웠다가 때가 되면 다시 채워질 것들이다. 11월이 내 둘레에서는 개울...  
23 바라보는 기쁨
오작교
277   2021-11-12 2021-11-12 20:51
산중에 갇혀서 살다 보면 문득 바다가 그리울 때가 있다. 국이 없는 밥상을 대했을 때처럼 뻑뻑한 그런 느낌이다. 오두막에서 차로 한 시간 남짓 달려가면 바다와 마주할 수 있다. 아득히 멀고 드넓은 끝없는 바다. 아무것도 거치적거릴 게 없는 훤칠한 바다....  
22 세상에서 가장 위대한 종교
오작교
276   2021-11-12 2021-11-12 19:54
요즘 고랭지에서는 가는 곳마다 감자꽃이 한창이다. 드넓은 밭에 가득가득 피어 있는 단일 작물의 꽃은 이런 고랭지 아니면 보기 드문 볼만한 풍경이다. 감자꽃은 보랏빛과 흰빛 두 가지인데 그중에도 노랑 꽃술을 머금고 있는 흰 꽃이 돋보인다. 또 여기저기...  
21 겨울 자작나무
오작교
275   2021-11-12 2021-11-12 20:01
자다가 저절로 눈이 떠진다. 어김없이 새벽 한 시에서 한 시 반 사이. 이때 내 정신은 하루 중에서도 가장 맑고 투명하다. 자연은 사람의 나이를 묻지 않는다는데, 나이 들어가는 탓인지 남들이 곤히 잠든 이런 시각에 나는 곧잘 깨어 있다. 둘레는 아무 소리...  
20 오래된 것은 아름답다
오작교
273   2021-11-12 2021-11-12 20:55
얼마 전에 그전에 살던 암자에 가서 며칠 묵고 왔다. 밀린 빨랫거리를 가지고 가서 빨았는데, 심야전기 덕에 더운 물이 나와 차가운 개울물에서보다 일손이 훨씬 가벼웠다. 탈수기가 있어 짜는 수고도 덜어 주었다. 풀을 해서 빨랫줄에 널어 말리고 다리미로 ...  
19 지금이 바로 그때
오작교
272   2021-11-12 2021-11-12 19:56
승가에 결제, 해제와 함께 안거 제도가 있다는 것이 얼마나 고맙고 다행한 일인지 모른다. 결제 기간과 해제 기간은 상호 보완한다. 결제만 있고 해제가 없다면 결제는 무의미하다. 마찬가지로 해제만 지속된다면 안거 또한 있을 수 없다. 여름철 결제일인 음...  
18 청소 불공
오작교
271   2021-11-12 2021-11-12 20:44
첫눈이 내리고 나서부터 개울가에는 얼음이 얼기 시작했다. 나무들도 그동안 걸쳤던 옷을 훨훨 벗어 버리고 알몸으로 의연히 서 있다. 말 그대로 낙목한천(落木寒天)의 계절. 오늘은 마음을 내어 대청소를 했다. 구석구석 쓸고 닦고, 여기저기 널려 있던 것들...  
17 자신의 그릇만큼
오작교
271   2021-11-12 2021-11-12 19:55
올해는 봄이 더디다. 이곳 산중은 엊그제가 춘분인데도 아직 얼음이 풀리지 않아 잔뜩 움츠린 채 봄기운을 그리고 있다. 하지만 머지않아 꽃바람이 올라오면 얼음이 풀리고 새싹들이 돋아날 것이다. 어김없는 계절의 순환에 따라 바뀔 것들은 바뀔 것이다. 사...  
16 아궁이 앞에서
오작교
271   2021-11-12 2021-11-12 19:52
절에 들어와 내게 주어진 최초의 소임은 부목(負木)이었다. 땔감을 담당하는 나무꾼인 셈이다. 이 소임은 행자 시절 은사께서 내게 내린 출세간의 선물이기도 하다. 당신도 절에서 맨 처음 본 소임이 부목이라고 하셨다. 1950년대 통영 미륵산에 있는 미래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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