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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랍 속의 카프카 / 나를 격려하는 하루

오작교 3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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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 봄, 모처럼 시간을 내어 프라하를 찾아갔습니다. 프라하를 간다는 것은 곧 작가 프란츠 카프카의 흔적을 찾아간다는 것과도 같은 의미입니다.

   프라하에는 카프카의 흔적이 여러 곳에 흩어져 있습니다. 그의 아버지 헤르만 카프카가 프라하 상류층으로 갓 진입해 들어오던 성공한 유대 상인이었기 때문입니다. 헤르만 카프카는 돈을 벌면 중심가에 더 가까운 곳을 향해, 부유함을 더 드러낼 수 있는 집을 찾아 이사를 했습니다.

   아버지 헤르만 카프카가 중심을 추구했던 인물이라면, 아들 프란츠 카프카는 변방을 추구했던 작가였습니다. 소외된 사람들의 고독과 좀체 수면 위로 모습을 보이지 않는 두려움을 써내려가던 카프카가 강인하고 완고한 아버지의 집에서 살아야 했다는 것은 얼마나 고통스러운 일이었을까요. 그래서 카프카는 글 쓰는 일에만 몰두할 수 있는 자신만의 방을 마련하기도 했습니다. 그 중의 하나가 황금소로 22번지, 파란 외벽을 가진 ‘카프카의 집’입니다.


황글소로 22번지에 있는 '카프카의 집'

  프라하 성 아래에 자리한 연금술사의 골목, 일명 ‘황금소로’라고 불리는 골목의 이 파란 집에서 카프카는 많은 작품들을 썼습니다. 늦은 저녁을 먹고, 절친한 친구 막스 브로트와의 산책까지도 마치고 나면 카프카는 프라하 성 쪽으로 난 길을 걸어서 이 집으로 왔습니다. 파란 집의 문을 닫아걸고 그는 밤 11시부터 새벽 2시, 때로는 새벽 3시가 되도록 글을 썼다고 합니다.

   한낮의 황금소로는 관광객들로 붐볐습니다. 카프카의 집은 이제 엽서나 음반을 파는 상점이 되어버렸지만, 그곳에서 저는 잠시 눈을 감고 카프카의 흔적을 한 줌이라도 느껴보려 애썼습니다. 이 작은 집에서 카프카는 안정감을 느꼈으리라. 그리고 아무도 없는 새벽길을 걸어 다시 집으로 돌아오면서 그는 때로 충만하고 때로 쓸쓸했으리라.


  지난해 프라하 블타바(몰다우) 강변에는 새로운 카프카 박물관이 문을 열었습니다. 구(舊)시가에서 말라 스트라나 방면으로 까를교를 건너 오른쪽으로 난 계단을 내려갑니다. 그리고 강변을 따라 계속 걸어가면 카프카 박물관을 만날 수 있습니다.

   카프카 박물관에서 저는 ‘전시란 이런 것이다’ 하고 느꼈습니다. 카프카 박물관은 빛과 어둠, 물과 서랍을 활용한 신선한 방식으로 위대한 작가 프란츠 카프카의 생애를 전시하고 있었습니다. 전시실 입구에 들어서면 가장 먼저 어둠을 만나게 됩니다. 그리고 스메타나의 교향시 《나의 조국》 중 제2곡 <블타바>의 선율을 듣게 됩니다. 아마도 사람들로 하여금 카프카의 세계로 들어서기 위한 준비를 하라는 의미겠지요.

   가장 먼저 마주치는 전시장에는 ‘물’이 등장합니다. 블타바의 강물을 상징하는 것이었을까요? 구석진 바닥에 물을 담고 그 속에 카프카의 삶을 증언하는 사진들을 넣어둔 아주 특이한 방식으로 카프카 전시의 첫 장은 시작되었습니다.

   카프카가 살았던 시대를 담은 영상물을 보고 나면 카프카의 삶을 둘러싼 사람들이 모여 있는 전시실을 만나게 됩니다. 끝끝내 화해하지 못했던 아버지, 고뇌하는 지식인의 유전자를 물려준 어머니, 카프카를 가장 잘 이해하고 격려했던 막내 여동생 오틀라, 두 번의 약혼과 파혼을 반복했던 펠리체 바우어, 친구 오스카 폴락의 아내이자 카프카에게 가장 깊은 영혼의 위로를 주었던 밀레나, 생애 마지막을 함께 한 여인 도라 디아만트, 그리고 원고를 모두 불태워달라는 카프카의 유언을 눈물을 머금고 지키지 않았던 친구 막스 브로트, 카프카를 사랑했고, ㅁ카프카 때문에 웃었고, 카프카 때문에 울었던 인물들이 어둠 속에서 한 줄기 빛을 받아 선명하게 그 모습을 드러내고 있었습니다.


  가장 놀라왔던 것은 ‘서랍’이었습니다. 마치 납골당처럼 전시실을 가득 채운 검은 서랍들. 그 서랍 중의 일부가 열려 있고, 그 안에 카프카의 유품들이 담겨 있는 전시 방식은 이 전시를 주관한 사람들이 카프카를 너무나 아끼고 깊이 이해하고 있다는 증거였습니다.

   세계 대전의 광기가 지배하기 전, 마치 폭풍전야처럼 불안하고 어두운 시대를 살다간 카프카는 “나는 온 세상을 두려워했다.”고 말했습니다. 밝음이라든가 햇살 같은 것과는 거리가 멀었던 카프카. 카프카의 불안, 카프카의 두려움, 카프카의 영광을 서랍 속에 담아두다니요. 카프카를 이보다 더 잘 표현할 수 있을까요? 검은 코트 안에 생을 감추고 휘적휘적 프라하의 새벽길을 걸어가던 카프카가 서랍 속에 있었습니다. 의식의 서랍을 열고 닫으며 고독하게 글을 쓰던 카프카가…….


  서랍 속의 카프카.

   하나의 서랍 속에는 평생 아버지와 화해하지 못했던 카프카가 들어 있고, 또 하나의 서랍에는 약혼과 파혼을 반복하며 ‘생활’을 두려워하던 심약한 카프카가 들어 있고, 또 하나의 서랍에는 프라하의 곳곳을 산책하며 영혼의 우물에 두레박을 던지던 카프카가 있고, 또 하나의 서랍에는 각혈을 하면서도 오직 글 쓰는 일만을 생각했던 치열한 작가 카프카가 있고…….

   도시는 예술가는 낳고 기르며, 훗날 그 예술가가 도시를 기릅니다. 프라하가 그 증거입니다.

글출처 : 나를 격려하는 하루(김미라, 나무생각) 中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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