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금은 덜 슬픈 꽃으로 피지 그랬습니까

보낼 수 없는 사람을 보내던 날

닦아내도 닦아내도
다시 피어나던 눈물 꽃을 기억합니다.

다시는 안부도 묻지 말라던
그 냉담한 눈빛이 무서워가 아니라

삼켜도 삼켜도 내 뱉아 그리울 이름이란 걸
미리 알았기 때문입니다.

 

그런 그대,
어디서든 안녕할 걸 알지만

이런 나,
어디서도 안녕하지 못함을
알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다 알고 감히
그대 이름 삼켜보았습니다.

보낼 수 없다는 걸 알면서 놓았을 때
이미 내 몸엔

눈물 먹고 흐드러진
눈물꽃 천지였는데

알고도 삼킨 그대 이름이 목에 걸려
죽을 만큼 아팠습니다.

빛고운 수국 같은 그대가
빛아린 슬픔으로

내 가슴에 피어나던 그 날 이후
줄곧 나는 그렇게 살았습니다.

눈물 꽃
처음 피던 그 날 이후


아프지 않아도 되는 날조차
그렇게
많이도 아팠습니다.

그런 그대,
눈물이 밥이 아닌
기억이라도 먹고살게


조금은 덜
슬픈 꽃으로 피지 그랬습니까...

지내고 보면 모두가 그리운 것 뿐인데

그때는 뼈를 녹일 것 같은 아픔이며
슬픔이였을 지라도 이제 지나고 보니
그것마저도 가끔은 그리워질 때가 있습니다.

어떻게 견디고 살았던가 싶을 만치
힘들고 어려웠던 일도
지금 조용히 눈을 감고 그때를 추억하다 보면

더욱 생생하고 애틋한 그리움으로
가슴에 남아 있는 것을 보면
더욱 그렇습니다.

고통스러운 삶의 질곡에 서있다 할지라도
결코 이겨내지 못할 일은
없다는 뜻이 아닐런지요?

가진 것의 조금을 잃었을 뿐인데
자신의 전부를 잃었다고 절망하는 것은

남이 가지지 못한 것이 보이지 아니함이요
남이가진 것과 비교해
조금 덜 가짐에서 오는 욕심이지요.

비워야할 것을 비우지 못한
허욕 때문이나
포기와 버림에 익숙하지 못해서 일수도 있습니다.

생사를 넘나드는
기로에 서있는 사람들의 자기실현은
참으로 소박합니다.

비록 평생 일어서지 못한다 할지라도
살아 숨 쉬고 있음 그 하나가
간절한 자기실현의 목표가 되고

살아 있음 그 하나만으로도
더없는 기쁨과
감사의 눈물을 흘리는 이들을 보게 됩니다.

남의 가슴에 들어 박혀 있는 큰 아픔 보다
내 손끝에 작은 가시의 찔림이 더 아픈 것이기에
다른 이의 아픔의 크기를 가늠하긴 어렵지만

더 이상 자신만의 생각과 판단으로
스스로를 절망의 늪으로
밀어 넣는 일은 말아야 합니다.

지난날을 되돌아보면
아쉬움도 많았고
후회와 한탄으로 가득한
시간 이였을 지라도

앞에서 기다리고 있는 새 날의
새로운 소망이 있기에
더 이상은 흘려보낸 시간들 속에
스스로를 가두어 두려하지 마십시요.

아픔없이 살아온 삶이 없듯이
시간 속에 무디어지지 않는
아픔도 없습니다.

세상을 다 잃은듯한
아픔과 슬픔 마져도
진정 그리울 때가 있답니다.

지금의 힘겨움
또 어디쯤에선가 그리워하게 될지..
살아온 시간들속에 참 많이도 격은
경험으로 분명하답니다.

주저앉고 싶었고
생을 포기하고 싶을 만큼의 고통
한두 번쯤 우리 곁을 스쳐갔습니다.

사는 일이 이런 것이라며
주어진 고통의 터널을
헤쳐 나가려 안간힘 쓰던 때에는

지금보다는 패기가 있어 좋았고
당당함이 있어 좋았답니다.

그 어려움의 시간들을
좋았다라고 표현할수 있는건
지금에 없는 젊음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사람 사는 일은 지나간 것에는 모두가
그리운가 봅니다.

이별의 고통 마져도
시간속에 아름다움으로 승화 할수있으니
시간은, 세월은 약 인가봐요.

지금 너무 힘들어 하지말아요.



가슴을 파고드는 현실의 비수가
우리삶 어디쯤에서
둥글게 닳아져 있을테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