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날 어렸을 적에 할머니가 꼭 안아주면서 아이구 내 새끼, 아이구 내 강아지 하시면서 궁둥이를 쳐주던 기억 때문인지 나 역시 우리 집 애들을 새끼들이라고 말하는 것이 훨씬 더 정겹다.

그때는 그 말의 뜻을 잘 몰랐다. 속으로 '왜 나를 새끼라고 하지' 하면서 할머니는 참 무식하시구나 했었다. 그렇다, 내 새끼는 나의 핏줄이다. 내가 있음으로 해서 조상의 빛난 얼을 오늘에 되살려 이 땅에 태어났고, 지 에비가 그리워 밤마다 품안으로 파고드는,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핏줄이다.
이제서야 내 새끼라고 하며 안아 주시던 할머니의 마음이 헤아려진다.

내 집은 작은 소형 아파트다. 큰 놈은 11살, 둘째는 8살, 셋째는 5살. 방 두개 짜리 작은 집에서 다섯 식구가 밥해 먹고 빨래도 해 널며 오순도순 살고 있다. 큰방은 이것저것 놓을게 많은 새끼들 방이고, 장롱 놓고 남은 공간에 이부자리 펴면 문 여닫는 것도 힘든 작은 방은 나와 집사람이 사랑을 나누는 공간이다.


우리 방은 작지만 그저 두 내외가 눕지도 못할 정도는 아니다. 그러나 문제는 매일 아침, 눈을 떠보면 상황이 심각하다. 큰 방에 재운 애들이 언제 왔는지 좁은 우리 방에 돼지 새끼들이 어미에게 안겨 있듯 품 사이에 끼여 있다. 배 위에 머리 대고 있는 놈, 다리 사이에 끼어 있는 놈, 늦게 온 녀석은 누울 공간이 없어 안스럽게도 벽쪽에 새우처럼 쪼그리고 잠들어 있는 놈, 매일 아침이면 갖가지 모양으로 새근새근  잠들어 있다.

나와 집사람은 애들에게 타일렀다. 제발 좀 오지 말라고. 그런데 애들은 자기들이 언제 이쪽으로 왔는지 모른단다. 하루는 이 녀석들이 언제 나타날까 하고 기다려 보았다. 새벽 2시쯤 한 놈이 화장실을 거쳐서 우리 방으로 건너와 이내 한쪽 구석에 자리 잡고 눕는다. 한 30분이 지나니 또 한 놈이 화장실에서 쫄쫄쫄 소리를 내더니 우리 쪽으로 와 끼여든다. 조금 후 드디어 마지막 한 놈이 나타나 픽 쓰러진다. 그래, 없이 살아 좁은 집이어 다행이지. 아이구, 저놈들 잠결에 우리에게 오는 길이 멀지않아 다행이지.


한번은 아침에 쪼그리고 자는 놈이 안쓰러워 녀석들이 모두 잠든 뒤 우리 내외가 큰방에 이부자리를 폈다. 귀신같은 놈들, 아침에 일어나 보니 모두 큰방에서 잠들어 있지 않은가. 그렇다, 새끼들은 지금까지 냄새로 지 에비, 에미를 따라 다닌 것이다. 그 후 우리 부부는 은밀한 공간의 작은방을 포기하고 새끼들을 위해 큰방에 이불을 펴기 시작했다.

가족계획이 심하게 장려된 내 나이 또래의 시대적 상황을 이해하는 사람들은 애가 셋이라고 하면
듣는 사람마다 퍽 안된 표정을 지어준다. 막내가 아들이군요 한다. 아니다, 큰놈이 아들 녀석이다.
가족수당, 분만비, 주택분양시 불이익을 주는 갖은 탄압에도 불구하고 다산한 이유는 솔직히 말하건대 내가 남들보다 많이 가질 수 있는 것은 새끼들뿐이었다. 부도 명예도 권력도 아니고 그저 나를 하늘로 여겨줄 이놈의 새끼들뿐이었다. 아이구, 내 새끼들.

(가족사랑을 생각하며. 정양^셈 일기장에서..옮겨왔습니다 )





♪^ ..
왔다리 갔다리 ,, 얌체없이
요~ 며칠 눈팅^만 즐기다 보이. 오작교감독님 보다.  
이쁘디  이쁜 고운초롱^ 방장님의 훈훈한 정성으로 따끈^따끈^ 데워진 사랑방의 훈기(♨)  
하~도 따스해 ~~~

죽장에 삿갓 쓰고, 대충대충 고개 넘어가던 객(코^삿갓)이
"술- 한잔주슈"하며 낑기 들고 말았습니다.. ㅎ.ㅎ.ㅎ..

삿갓 벗고 . 이렇케  돗자리에 업드려  큰^ 절로  꾸~우~뻑 .
사랑하는 울^님들을 향해 신고의 인사를 올리옵나이니  `기양  "이쁘게  봐^ 주시 옵 소서"      << 필 승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