완행열차/허영자


급행열차를 놓친 것은 잘된 일이다.

조그만 간이역의 늙은 역무원

바랑에 흔들리는 노오란 들국화

애틋이 숨어 있는 쓸슬한 아름다움

하마터면 나 모를 뻔하였지



완행열차를 탄 것은 잘된 일이다.

서러운 종착역은 어둠에 젖어

거기 항시 기다리고 있거니

천천히 아주 천천히

누비듯이 혹은 홈질하듯이

서두름 없는 인생의 기쁨

하마터면 나 모를 뻔 하였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