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에꽃 / 문정희


추위가 칼날처럼 다가든 새벽

무심히 커튼을 젖히다 보면

유리창에 피어난, 아니 이런 황홀한 꿈을 보았나.

세상과 나 사이에 밤새 누가

이런 투명한 꽃을 피워 놓으셨을까.

들녘의 꽃들조차 제 빛깔을 감추고

씨앗 속에 깊이 숨 죽이고 있을 때

이내 스러지는 니르바나의 꽃을

저 얇고 날카로운 유리창에 누가 새겨 놓았을까.

허긴 사람도 그렇지.

가장 가혹한 고통의 밤이 끝난 자리에

가장 눈부시고 부드러운 꿈이 일어서지.

새하얀 신부 앞에 붉고 푸른 색깔들 입다물듯이

들녘의 꽃들 모두 제 향기를

씨앗 속에 깊이 감추고 있을 때

어둠이 스며드는 차가운 유리창에 이마를 대고

누가 저토록 슬픈 향기를 새기셨을까.

한 방울 물로 스러지는

불가해한 비애의 꽃송이들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