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리산의 봄1/고정희

-뱀사골에서 쓴 편지-


남원에서 섬진강 허리를 지나며 갈대밭에 엎드린
남서풍 너머로 번뜩이며 일어서는 빛을 보았습니다.
그 빛 한자락이 따라와 나의 갈비뼈 사이에 흐르는
축축한 외로움을 들추고 산목련 한 송이 터드려 놓습니다.
온몸을 싸고도는 이 서늘한 향기,
뱀사골 산정에 푸르게 걸린 뒤
오월의 찬란한 햇빛이 깃털을 세우며
신록 사이로 길게 내려와 그대에게 가는길을 열어줍니다.

아득한 능선에 서 계시는 그대여
우르르우르르 우레 소리로 골짜기를 넘어가는 그대여
앞서가는 그대따라 협곡을 오르면 삼십년 벗지 못한
끈근한 어둠이 거대한 여울에 파랗게 씻겨내리고
육천매듭 풀려나간 모세 혈관에서 철철 샘물이 흐르고
더웁게 달궈진 살과 뼈 사이 확 만개한 오랑캐꽃 웃음소리
아름다운 그대되어 산을 넘어갑니다.
구름처럼 바람처럼 승천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