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수리의 최후.....(완결)

내 방으로 돌아온 나는 방 한 쪽을 다 차지한 괴물 독수리를 물끄러미 쳐다 보았다.
끄으으응!.........신음이 새 나왔다.
그날 나는 꼬박 5시간을 책상 앞에 쪼그리고 앉아,
(어머니는 아마 내가 약속대로 열심히 공부 하는 줄 아셨을거다.)
펼쳐 든 책속의 글씨들을 내 멋대로 이리 저리 재 배치 하며
내일부터 치러야 할 전쟁의 작전계획을 치밀하게 짜 나갔다.

사실은....너무 화가 나서 작전은 커녕 한숨 한번 쉬고,
허벅지 한번 쥐어 뜯고 또 한 숨 쉬고 머리 한번 쥐어박고 했다.

다음날 나는 친구 S를 꼬시고 달래서 우리집으로 모시고 왔다.
거의 생명이 꺼져가는 독수리를 보여주고 생명연장,기사회생,안락사(?) 등등의
단어를 내 뱉으며.......나는 울음을 터뜨리기 거의 일보직전의 상태였다.
S가 전원을 켜자 녀석이 가늘게 실눈을 떴다.
(당시 내 정신상태로는 그렇게 보일 수 밖에 없었다)
S는 전면 판넬의 각종 손잡이들을 이리저리 만지더니
어제 나와 똑 같은 자세로 전축 뒷 쪽으로 들어갔다.
나는 이녀석이 뭘 만지는지 보고 싶어서 고개를 이리 돌렸다 저리 돌렸다 해 보았지만
S의 양 손과 머리가 독수리 뱃 속으로 들어가 있었기 때문에 볼 수가 없었다.

잠시 후 "야! 내 책가방 좀 가져와 봐!"하는 소리가 들렸다.
나는 잽싸게 S의 책가방을 갖다 주었는데,
그 녀석이 가방에서 꺼낸건 놀랍게도 테스터기와 납 땜용 인두였다!
"가방안에 납 있거등? 그거 좀 꺼내 줘 봐!"
"어! 그래? 알았어."
............................

( 내는 니 씨다바리가?)
시다바리도 때로는 신이 날 때가 있다!
나는 어떻게든 녀석의 손 동작을 보기위해
그 독수리의 뱃 속으로 머리를 디 밀려고 노력해밨는데.......
어쩐지 S가 날 빼 돌리는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아니 지금 생각해보니 그 때 틀림 없이  짜식이 날 방해 했을거라고 생각한다.
지식의 권력화 또는 정보의 암호화다!
무지 몽매한 자의 서러움......

"꽝!!"
하는 소리에 나는 정말 기절 할 뻔 했다.
죽어가던 독수리가 갑자기 엄청난 괴성을 지르더니.....
"그건 너, 바로너,그건 너!!!....너 때문이야!!! "
라고 소리를  질러 대는게 아닌가?
"야 야!! 볼륨 줄여!"
나는 정신을 차리고 볼륨을 줄였다.
그리고 안도의 한 숨,벅차 오르는 환희를 맛 보며 동시에 S가 너무나 위대해 보였다.
이윽고 그 놈의 뱃 속에서 머리를 꺼내든 S가 이마의 땀을 한번 훔쳐 내더니
테스터기며 인두를 주섬주섬 챙기기 시작했다.
"야,야! 판두 되는거지?"
나는 혹시나 해서 물었는데 짜식이 나를 무슨 시험 빵점 맞고 벌 서는
국민학생 쳐다보는 선생님 같은 눈 빛으로 날 쳐다보더니....
"마! 도라이바나 갖꾸와!" 라구 소릴 질렀다.
우리는 둘이같이 앉아서 드라이버를 하나씩 들고
수술이 끝난 독수리를 정성스럽게 꼬매 주었다.

전축을 원 위치에 잘 자리잡고나서 S는 맞은 편 벽에 거만한 자세로 기대더니
나를 향해 "얼마 주고 산 거냐?" 라고 물었다.
나는 대답대신
"야! 덥지? 미숫가루 한 잔 갖다줄까? "
라고 내 뱉고는 부엌으로 갔다.
미숫가루를 타면서 나는 다시 생각을 정리했다.
'도대체 뭘까? 내가 빠트린게 뭐란 말인가?'
나는 어금니를 꽉 깨물고,결심 했다.
'오냐! 두고보자! 내가 독수리 아니라 코끼리라도 완전 분해했다가
다시 완벽하게 조립하는 실력을 갖추고 나면
네 녀석은 나한테 콘덴서나 팔아라 쨔샤!'

얼음에 설텅까지넣은 미숫가루를 갖다주자  녀석은 맛 있게 먹더니,
사촌형의 가게에 가야한다며 일어서려 했다.
나는 S에게 그랜드 펑크의 음반을 보여주고 같이 듣자며 다시 녀석을 주저 앉혔다.
나는 S에게 도대체 어떻게해서 독수리를 울게 했는지 물었지만
자식이 그냥 빙긋이 웃기만 했다.
사실 나중에 안 일이지만 그 전축은 큰 고장이 난 건 아니었다.
S가 취한 조치는 스피커 리드선을 다 잘라내고....
접속단자의 오래된 납 땜을 깨끗이 제거한 다음
새로 말끔하게 땜을한게 전부였다.
그러나 오디오라는 기계는 참 오묘한 것이.....
그렇게 정성들여 목욕을 시켜주거나,
배선 하나를 갈아 주는것 만으로도 다시 제 소리를 찾는 경우가 흔하다.
자신을 아끼고 사랑해주는 주인을 알아보는 강아지 처럼 말이다.

나는 그랜드 펑크의 음반을 자켓에서 꺼내들고 조심조심 턴테이블에 올린다음
친구와 함께 반대쪽 벽에 기대어 자세를 잡았다.
스피커에서 SzSzSzSzSz..... 하는 소리가 들렸다.
이 소리는 사람을 참 기분좋게 해준다.
지금도 가끔씩 LP를 듣지만 아무리 오래되고 낡아서 스크래치가 많은
음반도 플레이어에 얹고 카트리지를 올려 놓았을 때 처음 들리는 그 소리는
음악도 아니고 그냥 노이즈 일 뿐인데도 마음이 편안해진다.
그리고 진공관 앰프를 듣다 보면 그 불 빛에 취해 나도 모르게
환상의 세계에 빠져들기도 한다.
아날로그 세대라 그런가........

잠시후, 일렉트릭 기타가 아르페지오로 인트로를 연주하기 시작하다가
드럼이 가세하며.........
'둥둥둥 둥둥둥 웃 뚜두 둥둥, 딩 띠디 딩딩 웃~뚜 웃~뚜 둥둥둥'
나는 어느새 그들(Grand Funk Railroad, 3인조)과 함께
락커가 되어 환상의 세계로 빠져들고 있었다.
'하앗~~뿌레이커~~~캔~~테이커~~'
4곡(?)이 다 끝나고 스피커에서는
'스읏.....즈즈즈즈.....스읏.....즈즈즈즈...'
하는 소리가 흥분한 나의 호흡을 가라앉혀 주고 있었다.
나는 음반을 턴테이블에서 꺼내들고 나서야 S가 보이지 않는 것을 알았다.
(무식한 땜쟁이 눔!!)

내가 헤비메탈을 처음 들은것은 이 음반을 몰래 가져온 친구녀석의 형 방에서 였다.

(잠깐 실례 합니다!
장승백이 살던 이수 야! 보구싶다. 니네 집 원래 전라도 광주 였잖아.
군산에서 배타구 장항 가서 다시 버스타구 광주 니네집 가서 형 들이랑 조그만 버스타구
학교? 인가 하는 동네루 고기 잡으러 갔었지?
강 가에 깻 잎 뜯어서 된장 올리고 날로 먹던 그 고기가 지금 생각하니 은어 였나봐..
보구 싶은 친구야...어디 사니?)

그 형은 우리보다 4살인가 위였는데, 무슨 락밴드 같은 것을 만들어서
연습한다며 집에도 잘 들어오지 않는 뮤지션(?)
(집에서 보면 웬수!)비슷한같은 거였다.
그 친구의 집은 상도동 장승백이 근처였는데 엄청나게 큰 집이었다.
이른바 부잣집 아들들이었는데 동생은 우등생이고
형은 한국 락밴드의 미래를 짊어질(?) 숨은 진주였다.
그 형 방에는 산수이(확실하진 않지만 Sansui, Pioneer, 아니면 Sheerwood 뭐 그런거 였을거다.)
전축이 있었는데 방의 불을 다 끄고 전원을 올리면 .........진짜 죽인다.
좌우 스피커가 분리된 최고급 전축이었다.
그 형꺼는 음악이 나오면,스피커 그릴에서 빨강,노랑,녹색 불 빛이 껌뻑 껌뻑하는데
싸이키 델릭이 따로 필요 없었다.
LP판이 한 이 삼 십장 정도 있었는데,
Led Zeplin, Deep Purple, Cream....같은 처음보는 락그룹이었다.
괴이한 복장에 치렁치렁한 긴 파마머리, 얼굴에 화장까지 한 생전 처음보는
외국인들의 모습과 귀를 찢을것 같던 그 들의 음악은 내겐 충격이었다.
그 때까지 내가 즐겨듣던 음악은 스키터 데이비스, 페티 페이지, 넷 킹콜 같은
또래의 친구들에게 얘기하면 '그게 누군데?' 하는 가수들이었다.
올드 팝 얘기는 나중에 하기로 하고.....
어쨌든 당시의 수 많은 락그룹 중 내게는 단연코 그랜드 펑크가 최고였다.
나는 다시 한 번 음반을 걸고 처음부터 끝까지 최고의 연주를 즐겼다.

그런데 사실 나의 독수리는 나이가 나이인지라 헤비메탈보다는 프랭크 시나트라, 펫 분,
앤디 윌리엄스, 패티 페이지,스키터 데이비스... 등등의 노래를 훨씬더 맛깔스럽게 불렀다.
세월이 흘러 지금 내가 즐겨듣는 음악을 보면
나이에 따라서 음악 취향도 달라진다는 걸 느낄 수 있다.
그런면에서 그 당시 나의 독수리의 취향은 나랑 참 잘 맞았던것 같다.
사실 우리 집은 내가 아주 어렸을 때는 잘 사는 축에 끼었다.
군인이셨던 아버지와 인텔리 어머니는 취미도 비슷하셔서 음악을 사랑하셨고,
특히 어머니는 성악을 하셔서 노래를 정말 잘 부르시고  영화광이셨다.
지금은 노쇠하셔서 가사도 잘 기억하지 못하시지만
아직도 여전히 목소리는 아름다우시다.
어머니!!
(이 글을 쓸 때만 해도 오마니가 내 곁에 계셨었는데......)

내가 국민학교 다니던 시절에 언제부턴지 모르지만 우리집에도 전축이 있었다.
아버지가 엄청나게 아끼시던 전축이었는데 독일제 그룬딕(Grundig)이라는 모델이었다.
요즘은 고급 카페에서 인테리어 용으로도 사용하는 것 같던데 매우 아름다운 외양을 가진 전축이었다.
턴테이블에 음반을 한 4장쯤 올려놓으면 1장이 끝날때마다 자동으로 판이 척척내려오는 재미있는 물건이었다.
그렇지만 아버지가 열쇠를 잠궈 놓고 다니셨기 때문에
나는 전면 판넬에 있는 스위치들을 이리저리 누르며 가지고 놀곤 했다.
가세가 기운 뒤에 그 전축이 어느 날 사라졌다.
전축 뿐 아니라 티 브이,브라더 미싱 등등....
빨간 딱지 붙어 있던것 들....
잠시 옆으로 샜네요...ㅎㅎㅎ

다시 나의 독수리.....후기

스테레오가 처음 나왔을 때 사람들은 충격을 받았었지요.
모노 라디오나 스피커 하나 짜리 전축을 듣던 사람들이 스테레오 하이 피델리티 사운드로
왼쪽에서는 기타가 오른쪽에서는 올갠이 가운데에서는 가수가 노래를 하듯이 들리는
이른바 STEREO SOUND로 음악을 듣게 되면 한 마디로 환상 그 자체였었지요.
저 역시 마찬가지로 친구 녀석의 형 방에만 갔다오면 내 방에서 열심히 노래 부르는 독수리를
공연히 잔뜩 째려보게 되었답니다.
제 전축도 스테레오긴 했지만,일체형 이라서 좌 우 스피커의 거리가 1미터도 안 되었지요.
이른바 음장(音場)이 넓고 깊어지는 문제인데요....
요즘 하이 앤드 제품들은 짧은 간격에서도 훌륭한 음장을 재현하는 성능이 우수한 것들도
많지만....일단 스피커 간의 거리가 당시에는 문제였지요.
그래서 스피커 분리형이 나중에 나오게 됩니다.
엄청 비싸지요....ㅎㅎㅎ

돈 안 들이고 일체형 전축을 분리형 스테레오로 만드는 방법이 뭔지는
여러분도 아시겠죠?
결국 어떻게 됐겠습니까?
혈기왕성한 청년의 끓어오르는 지적 호기심에
그 독수리는 네발(?)을 절단 당하고 세 동강이 나서야 진정한 스테레오가 되었답니다.
양 쪽 스피커 부분을 톱으로 절단 하여 절개되어 드러난 옆 면을 합판으로 봉합하고
음악 신호를 나르는 혈관이라 할 수 있는 스피커선(대 동맥)을 길게 연결하여
좁은 방 안의 양 쪽 구석까지 최대한 벌려 놓고 침을 꿀꺽 삼키며 작동을 시켰지요.
마취도 안하고 세 시간에 걸친 대수술을 잘도 참아내더니,오티스 레딩의 아아~~삐인, 러빙 유우~~~
노래를 멋 들어지게 불러주더군요.
크흐흐흐~~~

음악을 들을 때는 불을 끄고......방음 한다고 창문에 홑 이불을 망치로 못 을 박아 걸었다가
어머니한테 들켜서 DG게 맞은 기억두....ㅎㅎㅎ
분리형(간이 분리형?)스피커의 위에 꼬마 전구를 부착하고 살짝 풀어둔 다음 무늬있는
유리 컵을 엎어 씌우고 베이스를 많이 넣은 음악을 틀면......스피커가 쿵! 쿵!
할 때 마다 꼬마 전구가 진동을 받아 껌뻑 거리던 기억....
여하튼 저두 그 친구 형 처럼......친구들 사이에선 인기(집에 데려와서 같이 음악 들을 때만)
집에서는 웬수(?) 였을 겁니다.
저희 집에는 부모님이 즐겨 들으시던 올드 팝,칸초네,영화 사운드 트랙 등의 LP 들이 꽤 있었습니다.
아버지는 옛 날 생각이 싫으셨던지......음악을 거의 안 들으셨고 모두 버리라고 하셨지만
어머니께서 몰래 간직하고 계셨었나 봅니다.
그 때는 그 음반들이 그렇게 귀한 건지도 모르고 그저 재미 있기만 했었지요.
스키터 데이비스,카니 후란시스,짐 리브스,프랑크 시나트라,발렌티노,닥터 지바고의
오리지날 사운드 트랙,바람과 함께 사라지다,오티스 레딩과 윌슨 피켓,등려군과 미소라 히바리.....

나의 독수리는 그렇게 오랫동안 나를 행복하게 해주다가...
1970 년 대가 저무는 해 겨울에 가뿐 숨을 거두고 생을 마감하였습니다.
아직도 내 추억 깊은곳에는 살아 있지만...........

---끝---

P.S.  정리 좀 더 하고 시제도 좀 고치고 할려 그랬는데....
고우님 성화에....ㅎㅎㅎ
지루하고 유치한 얘기에 끝까지 관심 가지고 읽어 주신 분들께
다시 한 번 감사 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