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밤/김용택


달빛이 하얗게 쏟아지는

가을 밤에

달빛을 밟으며

마을 밖으로 걸어나가보았느냐

세상은 잠이 들고

지푸라기들만

찬 서리에 반짝이는

적막한 들판에

아득히 서 보았느냐

달빛 아래 산들은

빚진 아버지처럼

까맣게 앉아 있고

저 멀리 강물이 반짝인다

까만 산속

집들은 보이지 않고

담뱃불처럼

불빛만 깜박인다

하나 둘 꺼져가면

이 세상엔 달빛뿐인

가을 밤에

모든 걸 다 잃어버린

들판이

들판 가득 흐느껴

달빛으로 제 가슴을 적시는

우리나라 서러운 가을 들판을

너는 보았느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