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
    고(故) 김대중 전 대통령 인생 역정 '인동초'(忍冬草) 고난과 인내의 연속이었다. 그는 '민주화의 상징'이자, '한민족 최초의 노벨상 수상' 세계 평화와 인권의 대명사 다도해 외딴섬인 전남 신안 하의도 가난한 소작농의 차남으로 태어난 가난한 자의 승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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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97년 대통령 당선 직후 "가장 중요한 것은 우리 사회에서 정직하고 부지런하고 능력 있는 사람, 한마디로 바르게 산 사람이 성공한 사회를 만들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바르게 살지 않은 사람은 실패하는 사회'를 만들어야 하며, 그래야 정치도 경제도 사회도 바르게 되고 자식들도 바르게 자랄 수 있다는 것.".
    세 번 실패를 거듭한 7년 뒤 1961년에야 강원도 인제 보궐선거로 국회에 입성한다. 5·16쿠데타로 국회가 해산돼, 선서조차 하지 못한 채 의원직을 빼앗기고 1972년 일본으로 망명한 뒤 유신 반대 운동을 벌였다. '현해탄 납치 사건'을 당했고, 구사일생으로 목숨만 구해 강제 귀국 된다. 가택 연금과 징역살이를 반복하던 그는 1979년 10·26 쿠데타로 7년 만에 복권된다. 하지만 최대 시련은 또다시 닥쳐왔다. 신군부 세력이 '내란 음모' 혐의로 군법회의에서 그에게 사형 선고를 내린 것이다. 다행히 전 세계 지식인들의 구명 운동이 전개됐고, 덕분에 그는 형 집행 정지를 받은 뒤 1982년 미국으로 망명했다. 대통령 취임사에서 "지금 우리는 그야말로 고난의 강 이쪽에서 희망의 저쪽을 향해 위기의 강을 건너는 중대시기에 있다" "이 위기의 강을 건너는 다리가 되겠다"고 강조했다.
    남북통일에 대한 오랜 염원 결국 '햇볕 정책'이란 대안을 통해 분단 이후 첫 남북 정상 회담(2000년)을 노벨상 백 주년이던 같은 해에 그는 한민족 최초로, 그것도 가장 영예롭다는 노벨평화상을 거머쥐었다. 2002년 한일 월드컵을 성공적으로 치른 업적을 이루었다 어떤 고난과 역경에도 굴하지 않고 꿋꿋하게 다시 일어섰던 김대중 전 대통령. 이제 그는 우리 곁을 떠났지만, '인동초'는 국민 마음에 뿌리박고 남았다. "민주주의는 절대 공짜로 얻어지지 않는다" 그의 '행동하는 양심'에 우리가 빚진 것이, 그리고 앞으로 해야 할 일도 너무나 많이 남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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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파란만장했던 영욕의 후광(後廣) 김대중(DJ) 전 대통령은 통일운동과 민주화에 거대한 족적을 남긴 대한민국 현대사의 거목(巨木)이었다. 민주화와 민족통일을 향한 의지는 투옥과 연금, 망명의 고통을 딛고 마침내 인동초(人冬草)처럼 피어올라 헌정사상 첫 수평적 정권교체와 해방 후 첫 남북정상회담이란 열매를 맺었다. 그러나 마지막 숨을 거두는 순간까지 그가 놓지 못했던 남북화해라는 화두는 미완의 유업으로 남았다. 네 번 도전 끝 대통령 꿈 이룬 '인동초' 같은 삶을 살아 18일 타계한 故 김대중 전 대통령의 삶은 고난의 역사를 그리고 있다. 삼가 고인의 서거에 명복을 빕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