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2월 5일 토요일 정오를 넘긴 시간이었다. 대학 입시에 고배를 마신
아들이 재수를 하기위해 서울 강남의 학원에 접수를 하고 학원도 합격자가
발표되는 날이었는데 내가 퇴근을 했는데도 그때까지 집에 전화가 오지 않
았다고 했다.

나는 불안한 생각이 들기 시작해서 점심을 먹는둥 마는둥 하고 학원에 연속
전화를 해보았지만 통화중 이었다. 한참 후에 어떻게 통화가 됐는데 국.영.
수 과목 2등급 이었던 아들이 학원등록에 떨어 졌다고해서 왜 연락을 해주
지 않냐고 묻자 떨어진 사람들은 연락을 해주지 않는다고 했다.
속이 상했지만 항의를 할 시간도 없고 또 그럴 필요도 없었다. 우선 그래도
괜찮은 학원에 등록을 시키는 일이 급한 일이이서 처음에 등록을 했던 학원
과 같은 계열의 역시 강남에 위치한 학원에 전화를 했더니 그날 오후 6시
까지 접수를 받는다며 수능 성적표를 팩스로 넣으면 되냐고 물어보자 직접
와서 면접을 보아야 한다고 했다. 갈만한 학원에 가지 못하면 어떻게 할까
하고 걱정이 몰려오기 시작했다.

집사람한테 아들하고 고속버스를 타고 갔다 오라고 해놓고 생각하니 내가 직
접운전을 하고 가는 것이 빠를 것 같아 집사람과 아들한테 같이 가게 챙기라
고 하여 곧바로 서울로 출발하였다. 설 연휴를 3일 앞두고 토요일 이었지만
다행히 고속도로는 정체된 구간이 없어 거의 경주를 하듯이 달려 남원에서 서
울까지 3시간만에 갈 수 있었다.

입시학원에 도착하니 간단한 면접이었는데 그렇게 바쁜 마음으로 달려간 내가
허탈하기도 했다. 하지만 아들이 공부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 주었다는 사
실이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학원 근처의 원룸 3군데를 둘러보고 제일
나은 곳으로 계약고 하고 내려왔었다.

설 연휴를 마치고 2005년 2월 15일 부터 학원을 다녀야 할 아들은 짐을 챙겨
서 하루전에 올라가 일요일을 제외한 매일아침 6시에 일어나 아침 식사는 고
시원에서 하고 점심과 저녁 식사는 학원 식당에서 하면서 학원 생활을 잘 해
주는 것이 예뻤다.

수능을 마치고 지난해 보다는 전체적으로 잘 보았지만 수학을 학원에서 공부
할땐 1등급이 나왔었는데 2등급밖에 받지 못하고, 국어, 영어는 그런대로 잘
보았다고 했지만 아들놈은 아쉬운게 많은 눈치였다.

지방대학은 절대로 가지 않겠다고 하는 아들이 가나다군 3군데 모두 서울에
소재한 대학에 입학원서를 접수하고 나니 지난해에 낙방한 경험이 생각나서
불안한 나날들을 보냈었다.

그런데 2006년 1월 13일 내가 집에 퇴근을 하여 옷을 갈아입고 거실로 나가
는 순간 컴앞에 앉아있던 아들이 "아빠 나 동국대에 합격했어요" 하기에 나
는 "그냐? 축하해!!" 하고 말았는데 주방에서 저녁준비를 하고있던 집사람은
거실로 와서 "야 축하해!" 펄쩍 펄적 뛰다가 아들을 껴안아 주면서 축하를 해
주는 것이었다.

그리고 얼마전에 1년간 등록금 36%의 혜택(108만원)을 받고 등록금을 은행에
납부하고 지난 11일 서울에 올라가 학교 근처에 원룸을 계약하고 왔었다.
그런데 그날 홍익대에서도 후보 명단에서 합격이 확정되었다고 전화가 와서
포기 한다고 했었고, 오늘은 서울시립대에서 후보 명단에서 합격했다고 전화
가 왔다면서 오전에 집사람이 기쁜 목소리로 나한테 전화가 왔다. 그리고 아들
이 서울 시립대로 가겠다고 한다고 해서 그렇게 하라고 했다.
전통이 깊은 동국대도 좋지만 요즘엔 서울시립대가 더 좋다고 아들이 간다
는데 굳이 말릴 필요도 없다고 판단해서다.

좋은 학교는 아니지만 지난해에 고배를 마시고 3군데 모두 합격의 기쁨을 가
지게 되니 기쁘고 감사한 마음뿐이다. 아들은 학교에 다니다 올해도 더 좋은
대학에 도전하기 위해 수능은 꼭 한번 봐볼 것이라고 하고, 서울대, 연세대,
외대에 도전한 여동생의 아들도 서울대에만 불합격하여 연세대에 다니면서
수능 시험을 꼭 볼것이라고 해서 열심히 해보라고 했다. 부모가 자식 뒷바라
지 잘 해주는 것이 의무이기도 하지만 그 기쁨 또한 클테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