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경 선유동, 용추계곡, 괴산 선유동계곡, 상주 장각폭포



충북 괴산군과 경북 문경시의 경계에 있는 대야산(930.7m)의 동쪽인 문경 가은읍 완장리에는 내선유동(문경 선유동)이 있고, 서쪽 괴산군 청천면 송면리에는 외선유동(괴산 선유동)이 있다. 문경 선유동계곡의 상류는 용추계곡이 이어진다.



우복 정경세(1563~1633)는

「양쪽 선유동은 가까운 거리인데

지금은 그 사이에 구름이 한가롭고

어느 곳이 뛰어난지 평하기도 어렵도록

하늘의 장수가 있어 수석 고루 나눴네」 라고 두 곳의 선유동을 노래했다.



1.문경 선유동계곡


문경 선유동계곡은 넓은 흰 바위와 맑은 시내가 굽이치는 경치가 뛰어난 곳으로 9곡(九曲)이라 이름 붙은 경치 좋은 곳이 있다. 옥석대(玉석臺), 난생뢰(鸞笙瀨), 영귀암(詠歸巖), 탁청대(濯淸臺), 관란담(觀瀾潭), 세심대(洗心臺), 활청담(活淸潭), 영사석(靈사石), 옥하대(玉河臺)이다. 모두 바위에 큰 글자로 새겨 놓았다.




칠우정이 있는 하류에는 일곱 명소를 더하여 칠우대라 하였다.

칠우대(七愚臺) : 바위에 새긴 세심대(洗心臺), 망화담(網花潭), 홍류천(紅流川), 월파대(月波臺), 칠리탄(七里灘), 백석탄(白石灘), 와룡담(臥龍潭)과 또 모임을 같이 한 사람들의 호가 ‘愚’자로 시작하는 일곱 사람(七愚)들의 이름을 새겼다.



선유동계곡 관란담 위에 손재 남한조가 정자를 짓고 글을 가르쳤다는 옥하정터가 있고, 도암 이재는 용추동에 둔산정사(屯山精舍)를 짓고 후진(後進)을 양성했다.



지금의 학천정은 바로 도암선생을 추모하는 후학들이 그의 위덕을 기려 1906년에 세워졌으며, 오른쪽에 조그마한 건물 1간이 있어 도암선생의 영정(影幀)을 모 시고 있으며, 정자와 주변경관이 조화를 잘 이룬 절경지로 정자 뒤 거대한 암벽에는 「산고 수장(山高水長)」이라는 힘찬 필치의 글이 새겨져 있다. 현재는 공사 중이라 학천정은 들어 갈 수 없다.



학천정이 있는 옥석대는 선유동계곡에서 가장 경치가 좋은 곳으로 바위에는「선유동(仙遊洞)」이라는 글이 새겨져 있고 석문(石門)이라는 석각글씨도 있었으나 석문은 찾을 길이 없고 모두 최치원선생의 친필로 전해지고 있다.



<찾아가는 길>

점촌에서 문경 충주방면(국도 3호선)으로 18㎞떨어진 마성면사무소(소야교)앞에서 가은. 농암 방면으로 10여km를 가면 가은읍내를 지나게 된다. 여기서 석탄박물관쪽(청주.괴산방면)으로 8km쯤 더 가면 가은읍 완장리 본동(마을회관)이 나타난다. 여기서 계속 2km정도 도로를 따라가다 보면 도로변 좌측에 1,000여평 규모의 주차장이 보인다. 주차장 옆 송림이 우거진 경사진 도로가 있으니 이곳이 선유동계곡의 입구이다.




2.문경 용추계곡



선유동 입구에서 922번 지방도로를 따라 600m쯤 올라가면 대야산 용추 관광안내판이 설치되어 있으며 이곳에서 좌회전하여 벌바위 마을을 통과한다. 벌바위란 마을 뒤 산의 바위들이 벌집 같다고 지어진 이름이라고 전한다.






충북 괴산군과 경북 문경시의 경계를 이루는 가은읍 완장리의 대야산(大耶山 930.7m)은 정상 일대의 기암절벽도 뛰어나지만 제1의 명소는 문경 8경의 하나인 용추이다. 거대한 암반을 뚫고 쏟아지는 용추폭포아래 하트(♡)형으로 깊게 패인 소가 윗용추이고, 암반을 타고 흘러내린 물이 아랫용추를 이루는데 여름철 피서객들의 미끄럼틀로 이용되는 곳이다.



암수 두 마리의 용이 하늘로 오른 곳이라는 전설을 증명이라도 하듯이 용추 양쪽 거대한 화강암 바위에는 두 마리의 용이 승천을 할 때 용트림 하다 남긴 용비늘 흔적이 선명하게 남아 있고, 아무리 가물어도 이곳의 물은 마르는 일이 없어 극심한 가뭄이 들면 이곳에서 기우제(祈雨祭)를 올리기도 하였다고 한다.



용추폭포를 지나 20분 쯤 오르면 달이 뜨는 밤이면 바위가 계곡에 비친다고 하는 월영대(月影臺)가 나타난다. 이곳도 미끄럼타고 물놀이하는 명소이다. 아래쪽에는 ‘술상바위’라 하는 큰 바위가 있다.



3.괴산 선유동계곡


괴산군 청전면 송면리에 있는 선유동 구곡은 1.8Km로 인접한 화양동 구곡에 비해 그리 크지는 않으나 주변 풍광은 화양구곡에 못지않고 맑은 물과 넓은 암반이 절경을 이룬다.




신라 말 고운 최치원이 이곳을 소요하면서 선유동이라는 명칭을 남긴데서 유래했고 그 후 퇴계 이황이 칠송정에 있는 함평 이씨를 찾아왔다가 이곳의 비경에 사로잡혀 아홉 달을 돌아다닌 뒤 아홉 개의 이름을 지어 글씨를 새겼다고 한다. 선유동문, 경천벽, 학소암, 연단로, 와룡폭, 난가대, 기국암, 은선암 등이다.



송면리는 조선 선조 때 붕당이 생길 것을 예언했던 동고 이준경이 장차 일어날 임진왜란을 대비하여 자손들의 피난처로 정했다고 전해진다.



비수기에는 계곡 길을 따라 승용차 진입이 가능하고 입장료는 없다.



4.상주 화북면 장각폭포와 상오리칠층석탑

1)장각폭포


상주시 화북면 상주학생야영장 옆으로 난 길을 따라 500m정도 가면 장각폭포가 나온다.


속리산의 최고봉인 천황봉에서 시작한 시냇물이 장각동 계곡을 굽이쳐 흘러 마침내 낙동강에 합류하는 물줄기의 머리부분이다. 6m 높이의 절벽을 타고 떨어져 작은 못을 이룬다. 장대하지는 않지만 불멸의 이순신, 제국의 아침, 태양인 이제마, 낭만자객 등을 촬영한 명소이다. 폭포 위의 기암에는 금란정이 세워져 있다.





2)상주 상오리 칠층석탑(보물 제683호)


장각폭포에서 1.5km정도 가면 왼쪽에 외딴집 한 채가 있고 그 맞은편 둔덕 위 밭 한가운데 있다.  


탑이 세워진 이 곳은 장각사라는 절이 있었던 곳으로 전하나 확실한 기록은 없다. 탑은 2단의 기단(基壇) 위에 7층의 탑신(塔身)을 세운 일반적인 모습으로, 흙을 다져 만든 단 주위에 돌로 테두리를 잡아 구역을 정한 후 그 위에 탑을 세웠다.



기단은 여러 장의 판돌로 이루어졌고, 탑신은 위층으로 올라갈수록 일정 비율로 줄어들고 있다. 1층 몸돌은 3개의 돌로 구성되어 있으며, 네 모서리에는 기둥 모양이 새겨져 있고 동쪽 면에는 문짝 모양의 조각도 있다. 2층 이상은 지붕돌과 몸돌을 하나의 돌로 구성한 특징이 보인다. 얇아보이는 지붕돌은 느린 경사가 흐르고, 네 귀퉁이에서의 치켜올림이 뚜렷하며, 밑면의 받침은 5층까지는 5단을, 6·7층은 4단을 두었다. 꼭대기에는 머리장식을 받치는 네모난 받침돌만 남아 있다. 1층 몸돌 동쪽면에 문고리를 잡근 문양이 유일한 장식이고 전체 높이는 9.21 m이다.



탑신의 경쾌함이 돋보이는 탑으로, 크기가 장중하고 전체적인 균형의 정제미가 뛰어나서 통일신라시대의 석탑양식을 이어받은 고려 전기의 작품으로 추정된다.



구전에 의하면 한일합방 당시 일본헌병이 낭인을 동원하여 북쪽 기단을 허물고 무너뜨렸다고 한다. 1975년도에는 직지사에서 이전을 시도했으나 주민들의 반발로 뜻을 이루지 못하였고, 1977년에는 국가지정 문화재로서 가치가 있다고 판단되어 상주시(당시 상주군)에서 복원하였다. 서쪽으로 법당 자리였던 곳에 주초석이 여섯 개 있는 것으로 보아 다섯 칸 정도의 법당으로 추측된다.



괴산 선유동계곡에서 장각폭포를 넘어 상주로 가는 길에는 화북 장암리에서 속리산 문장대로 오르는 등산로 입구에 있는 오송폭포와 문경 농암과 상주 화북 사이를 잇는 쌍용계곡, 15m 높이의 옥양폭포 등의 명승지가 있다. 또 청정채소 재배로 유명한 청화산 농원과 관광휴게소가 있어 농장 견학과 식사도 가능하다. 이 길은 물이 맑아 송어횟집이 많고 가을철(9월 중순에서 10월 초순경)에는 도로가의 판매장에서 송이(항시 구입가능), 능이, 싸리버섯(미리 예약이 필요) 구입도 가능합니다. 괴산 방명으로는 구곡계곡, 화양동 계곡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