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러기를 한자로는 안(雁), 또는 홍(鴻)이라 하네. 기러기는 새들 중에서 자기 위치를 가장 잘 아는 것으로 유명하지. 가을에 끼룩끼룩 울며 질서정연하게 푸른 하늘을 날아갈 때 기러기는 V자 모양의 순서를 흩뜨리는 법이 없거든. 안행(雁行)이란 말이 그래서 생겼다네. 기러기 행렬처럼 인간도 형제간에 위치와 순서를 지키며 살아가는 걸 높여 부르는 말이지. 기러기는 부부간 금실도 지극해서 암놈이 알을 품는 30여 일 간을 수놈은 자리를 뜨지 않고 보호한대. 암놈이 죽었을 때는 수놈이, 수놈이 죽었을 때는 암놈이 재가하지 않고 독신으로 여생을 마친다구. 기러기의 자식사랑은 유별나지. 야산에 불이 나 위기일발에 처했을 때 품에 안은 자식과 함께 타 죽을지언정 어린기러기 홀로 내버리고 도망갈 줄 모른다 하데. 흔히 부부애가 두터운 것을 원앙새에 비유하기도 하지만 사실 원앙은 바람둥이고, 진짜 절개를 지키며 사랑하는 새는 기러기야. 그래서 전통혼례에서 목안(木雁)을 전하는 의식이 있었지. 옛날에는 아들을 둔 집에서는 기러기를 집 안에서 기르다가 아들이 장가 가는 날 기럭아범[雁夫]이 등에 지고 신랑 앞에 서서 갔다네. 이것이 불편하여 나중에는 조각하여 채색한 나무기러기로 대용하였지만, 기러기는 사랑을 상징하는 것으로, 신랑이 신부의 양친 또는 친척 앞에서 신부와 백년해로의 서약을 할 때 전달하는데 이 식을 전안(典雁)이라 했어. 이런 습성 때문인지 기러기는 노래나 문학작품에서 인간사에 대한 비유로 자주 등장한다네. 기러기아빠(雁夫), 기러기엄마라는 말이 그래서 사용되었을 꺼야. 기러기아빠는 조기 유학 가는 아이들과 함께 아내마저 떠나보내고 홀로 남아 뼈 빠지게 일해 학비를 모아 보내는 자네들 같은 중년 가장이지. 21세기 한국교육의 파산을 풍자하는 말이 되었네. 얼마 전 아들딸과 아내를 외국에 보낸 한 아빠가 자살을 했다느만. 다른 곳도 아니고 자기 아버지의 묘소 옆 소나무에 목을 맸다는 거야. 유서에는 "조금 있는 자산은 처분해 처에게 보내주고, 자살했다고는 말하지 말라. 먼저 가서 미안하다." 고 적었대. 묘소 앞엔 소주병과 과일이 놓여 있었고, 자기를 낳고 키워준 아버지 앞을 이승을 떠나는 출발장소로 택해야 했던 그의 가슴에 담긴 말들이 어찌 유서의 그 내용 뿐이었겠는가. 자기위치를 지키며 아내와 자식을 사랑한다는 기러기의 미덕이 이렇게 우울하게 결말지어지는 우리네 현실이 무참하지 않은가. 그래도 힘 내시게. 예까지 온게 아깝지 않은가? 먹는 거 소홀하지말고... 참으로 슬픈 현실입니다. 너무도 높은 교육열 때문에 아빠들은 가족과 생이별을 하면서... 문득 멀리 호주에 두 자녀를 유학보내고 10년넘게 외롭고 힘들게 살아가는 오랜 친구의 모습을 생각하면서.. 제홈 여기저기 퍼다가 옮겨놓은 그림들 그리고 음악 짜집기 해서 만들어 보았습니다. 08년 7월 마지막날 너무덥고 갑자기 쓸쓸하여 잠못이루는 밤에 이슬이가 이땅의 모든 기러기 아빠들에게 이글을 바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