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백두산 - 고은 ]


모든 산들을 저 아래에 두고
몇억만년 지나도록
아직껏 이것은 산이 아니었다

오 너 백두산
그토록 오래된 나날이건만
새로이
네 열여섯봉우리 펼쳐라





장군봉 망천후 사이
성난 노루막이 비바람쳐
가까스로 날라가버릴 몸뚱어리 버티고 선
내 불쌍한 발밑조차
보이지 않아 캄캄하지만
수많은 어제였던 오늘이었고
내일이어야 할 오늘이었다





활짝 펼쳐라
여기 억만년 세월의 가슴 있다면
그 가슴 삼아
열여섯봉우리
네 이름을 부른다





열여섯봉우리
스물여섯봉우리에 걸어
이 나라 시원 속에서
다시 태어나는
너를 부른다





목 놓아
너를 부른다
푸른 피 엉겨
푸른 피 엉겨
너를 부른다





장군봉이여
백운 관면봉이여
삼기봉이여
천활 지반 왕주 제운봉이여
와호 고준 자하봉이여
화개 철벽 용문봉이여
관일 금병봉이여





오늘 네 이름을 부르고 부른다
네 이름 불러
하늘의 물
자손만대로 나아가는
천지여
네 거룩하지 않을 수 없는 이름 부른다





그리하여 백두산 열여섯 봉우리의 나라
동방 옛 조선 이래
끝없이 앞을 향하여 가고 있다
그토록 숨돌릴 겨를 모르던 침노
한사코 물리쳤다





여기 백두산
힘찬 아기처럼 쩌렁쩌렁 울어대는 환희일진대
눈부시어라

그날을 네 아름다운 이름으로 불러
어서 오라
어서 오라 춤추는 빛발 아니고 그 무엇이리





여기
백두산 열여섯봉우리에 이어
삼천리 강도
수수천만 온갖 산 온갖 봉우리
온갖 골짜기
그 이름을 부른다





지난 날 이 겨레 극심하게 잃은 것들
기어이 찾아내는 기쁨으로
이름 없는 모든 것 다
이름 붙여
그 이름 새로 부른다





이 나라 온통 하나의 백두산인 그날을
네 이름으로
네 이름으로 부르고 부르고
또 부른다
이여
이여
이여
이여
이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