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간 순간을 충실하게 살면서
많이 보고 많이 받아들이며
이해 하고  나눌줄 아는 사람을 보면
저사람은 참으로 행복한 사람이구나.
또한 자기가 행복하니 남에게도 행복을 줄수있는 사람이구나,  라는 생각이 들곤한다.

자기가  즐겁지 않고 행복하지 않는데  남에게 즐거움과   행복을 준다는건 가식 일 뿐이라고..
그래서 항상 동생을 보면 그렇게 생각이 들곤한다.
그 입가에 번지는 미소는 가식
언니가 걱정할까봐서 분명 가식일것이야.


울산 현대에 적을두어  동생내외는  주말부부다.
주말부부라서 혼자서 아무것도 모르는 치매 노인을 수발한다는것이
또 그기간이 4년이 되고보니 언니된 마음에 도와줄건 암것도 없고
마음만 아파서 저노인네 이제는 가셨으면 하는 마음이 항상 들곤했다.
해서!
너네 어른 기력어때?
베란다에 떠밀렸던 그후 일년간 거의 매일 전화를 해서 묻곤했다.
언니 왜 하면은.
이제는 기력이 없을때도 된거 같아서 하면은..
언니야 기력을 놓으면 가시잖아.
그래서  다섯끼  많이 먹여드리고있어.
기력 놓을까 겁이나서.
그길은 한번가면 올수없는 길이 잖아.
안그래도 박서방 토요일 내려오면 엄마가 자식을 몰라보니
왔다고 인사도 않구 간다구 인사도 안하길래.
기가막혀 너무나도  기가막혀
어른이니 몰라도 인사드리고 가라고 방에 떠밀어 넣었더니
마지못해 인사하고 올라갔는데 언니까지 그러지마...그럼 벌받어.
벌은 무슨......
4년간 명절때도 친정못오는 동생을 보면서 전 이런자신이 나쁜생각이 아니라고 들었다.
정말 벌받을까요?

언니야  나죽을뻔했데이~그소리 들은후 매일 답답해서 전화를 했는데
그날은 웬일로  새벽에  동생한테서 전화가 왔다.
언니야  언니한테 말은 안했지만
5시되면 일어나서 어머니 입술 말라 갈라 질까봐 숫가락으로 물 몇숫가락
떠넣어 드리고 밥을 하러 나가는데.
으늘도  물  두숫가락 떠넣어 드리니
오늘은 정신이 말짱하게 애미야  불르면서 며늘아 수고했다  
그말한마디만 하더니 숨을 안쉬는데
돌아가신거지? 가신거맞지? 하는것이 였다.
그래서 전 그랬습니다.
너 일어나도록  그말할려고 기다렸나보다.
아이구 야야 수고했다.
정말 잘되었네 했더니 전화를 딱끊어 버리는것이었다.
아무리 화나도 그렇게 전화를 끊어버리는 아이가 아닌데..

다시전화와서 받았더니 언니는 사람이 돌아가셨는데 8,15 해방된거마냥
잘되었다가 뭐니?
순아  양면적인 언니를 이해해라..했더니
펑펑울면서 당신의 자식 6남매라도 종신을 며늘이 한테만 받아서
어머님이 너무나 불쌍해서 가슴이 아푸고..
내  에어로빅을   음악틀어놓고  아이들과 같이 하면
너무나 즐거워하시면서 손벽을 마구 마구 쳐주었는데.
기분이 쬐끔우울해서 못할때는 애기야 오늘은 궁댕이춤 안춰 했는데..
이럴줄알았으면 궁댕이춤 많이 많이 쳐줄걸 그랬어.
10년간 일주일에 2번 목욕시키면서 목욕안할려고 해서 언성높였는데 이럴줄알았으면
그러지말걸 그랬어.
화투 많이치면  치매안걸린다기에  치매걸리지말라고  동전만 생기면
어머님 지갑에 넣어드리고 했는데  많이 많이 넣어 드릴껄 그랬어...그런다
난  참 기가 막힐 뿐이다.
난 어른이 고통 스러워하는걸 옆에서 볼 용기가 없어 병원에 입원시켜 간병인께서 다했는데.
그걸 생각하니 자신이 너무나  치졸한거 같다.
그래도 울엄니 아파서도 행복햇었다 라고 했는데....

그분이  가신지  몇달이 지났는데도 그렇게도 단아하고 미소가 아름다운 나의동생은
언니가 가식일것이라고 생각했던 그미소도 구경하지 못하고있다.
남편몰래 일주일에 한번씩 산소다녀 온다면서..
언니야 박서방한테는 말하지마.
산길운전한다고 그사람 걱정하니까. 그  우울한 한마디만 할뿐...

가신그분의 신명이 있다면..
조상 선령신이 있다면  말입니다.
나의 동생의 얼굴이 환해질수 있도록 우울함을 거두어 가셨으면 좋겠습니다.
그래서 덩달아 우울 바이러스에 걸린 저도 신명나게요.
형만한 아우없다는 그말은 옛말맞죠?
말씀좀 해주세요.

1년전의 글
제목...언니야  나 죽을뻔했데이~
수중마라톤 경기가 열렸다는 합천 황강을 바라보며.
그렇게 자맥질하며 살아온 생에 있어서...
멀리보이는 불타는 저황혼처럼   내생의 황혼이 저렇게도 아름답다면
난 낙관적인 삶에 나의 낙관을 찍을것이며
반대로 일그러진 삶이라 할지라도
비관적이라기 보다  최선의 낙관을 찍을것이다

황강의 굽이도는 와룡담을보며
몇백년을 흘러도 다툼이 없이 유유히 흐르는
저숙명앞에 촛점잃은 눈동자로 무아경에 빠졌다.

뭐든지 할수있는 자유앞에
뭐든지 누릴수있는 특혜앞에
아직도 풀리지않는 하나의 숙제.
그숙제를  아직도 풀지못함 앞에  나는  오늘도  아푸다

치매
지능 ·의지 ·기억 . 정신적인 능력이 떨어져
베란다에서 밀어 죽이려는   노인네와 떨어지지 않으려 발버둥치는
그 내란앞에 이웃의 도움으로 간신히  빠져나와 하룻살이보다 미약한 힘으로 들려오는 목소리

언니야!
나죽을뻔했데이~
그리고는 쓰러졌다.

주말부부인 나의 바로밑의 동생  시집의 6남매 막내
딸3명 그아이만은 맏이한테 안보내려  골르고 골라서 시집보냈건만...
나완다르게 단아하고 수줍음이 많은 그아이
소신있게 엄마한테   숫가락 하나 더놓으면  되는것 엄마 걱정마 잘모실께.
그러길 10년  3년전부터 치매로  여간 고생이 많은게 아니다 .

허지만 그아인 항상   언니야~걱정마
나는 요즘 수도하는 마음으로 생활에 임하고 있으니까
그한마디에 나는  너무나  알싸하다.
마음이~~~~
왜그렇게도 왜 이렇게도 알싸한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