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왼손가락으로 쓰는 편지/고정희


그대를 만나고 돌아 오다가
안양 쯤에 와서 꼭 내가 울게 됩니다
아직 지워지지 않는 그대 모습을
몇 번이고 천천히 음미하노라면
작별하는 뒷모습 그대 어깨 쭉지에
아무도 범접할 수 없는
독자적인외로움과 추위가 선명하게
그려지기 때문입니다

그대 독자적인 추위가
안양 쯤에 와서
더운 내 가슴에
하염없이 설화로 흔들리기 때문입니다

그대 독자적인 외로움과 추위를 마주하며
집으로 돌아오는 나는 처절합니다
되돌아 가기엔 난느 너무 멀리 와 버렸고
앞으로 나가기엔 나는  너무 많은 것을
그대 땅에 뿌려 놓았습니다

막막궁산 같은 저 어둠  어디 쯤서
내 뿌린 씨앗들이  꽃 피게 될런지요
간담이 서늘한 저 외롬 어디쯤서
부드러운 봄바람  나부끼게 될런지요

기우는 달님이 집앞까지 따라와
안심하라, 안심하라, 쓰다듬는 밤
열쇠를 끄르며 나는 웃고 맙니다
눈물로 녹지 않는 설화는 없다!

불로 녹지않을 추위는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