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하기 가장 좋은 때는 혼자서도 잘 살 수 있다고 생각되는 때, 사랑이란 외로운 두 사람이 만나 기대는 것이 아니라 독립한 두 영혼이 만나는 것이므로.

 

   사랑하기 좋은 때는 11월처럼 마음이 허전한 때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마음이 허전한 사람은 기대가 많은 법. 그래서 실패하기 쉽다. 나만의 사랑이 아니라 어딘가에서 본 사랑 풍경을 흉내 내고픈 유혹에 빠지기 쉽다. 

 

 

   사랑하기 좋은 때는 나 혼자서도 행복한 때다. 사랑은 허전함을 채우기 위해서나 외로움을 잊기 위해서 필요한 것이 아니다. 날마다 확인하는 이메일 같은 것도 아니며, 변덕스러운 날씨 같은 것도 아니다. 사랑은 나무들이 거기 있고, 숲이 거기 있는 것처럼 그저 거기 있는 것이다. 

 

   일 년 내내 같은 날씨만 이어지는 지역처럼 지루한 것이 사랑이고, 때론 변함없어서 지겨운 것이 사랑이다. 일 년의 절반을 떠났다가 돌아와도 아무데도 가지 않았던 사람처럼 여겨주는 라다크 사람들 마음 같은 것이 사랑이며, '희망이 없는 데도 당신을 사랑한다'고 말하던 영화 <러브 액츄얼러>의 안타까운 남자의 마음이 사랑이다.

 

   그러므로 그 사람에게 기대고 싶을 때가 아니라 나 혼자서도 잘 살 수 있다고 생각되는 때, 그때가 사랑하기 가장 좋은 때다.

 

 

글 출처 : 삶이 내게 무엇을 묻더라도(김미라 마음 사전, 샘앤파커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