흔히 개를 문명화된 늑대라고 말한다. 개를 사육하기 시작한 것이 14,000년 전이니 개는 가축들 중에서도 가장 오랫동안 인간의 동반자로 살아온 셈이다. 사냥감 물어 오기, 썰매 끌기, 가축이나 집 지키기, 시각장애인의 길잡이, 공항이나 국경 수색하기, 식용 개고기와 공업용 가죽 등 그 역할 또한 다양하다. 

 

   요즘에 실용적인 목적보다는 애완용으로 개를 기르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특히 자식이 없는 노부부나 독신자들에게 사랑스러운 애완견은 가족의 몫을 톡톡히 대신한다. 옛 서양회와에서 귀족들 곁에 개가 자주 등장하는 걸 보면 애완견의 역사도 꽤 긴 것 같다.

 

   개가 그토록 사랑받아온 이유는 무얼일까? 아마도 주인의 말에; 잘 따르는 충성심 때문일 것이다. 율리시스가 긴 장정 끝에 변장을 하고 집으로 돌아왔을 때, 유일하게 주인을 알아보고 반겨준 것도 그의 개 아르고스였다. 그 외에도 영민하고 충직한 개에 관한 일과는 수없이 많다. 프랑스의 '개들의 묘지'라 불리는 동물 공동묘지에 가면 이런 비문을 자주 볼 수 있다고 한다. "인간에게는 실망하지만, 나의 개에게는 한 번도 실망한 적이 없다." 이 말에서처럼 개에 대한 과도한 사랑의 이면에는 인간에 대한 불신이나 관계의 단절이 자리잡고 있다. 사람들은 자기와 다른 타인을 필요로 하기보다는 자기와 닮은 개를 더 원한다. 

 

   실제로 산책길에서 만난 개와 주인은 부모 자식처럼 어딘가 닮아 있다. 주인의 옷이나 신발과 개의 모습에서 어떤 일관된 취향과 애착을 읽어 내기는 어렵지 않다. 검은 등산바지와 등산화의 주인은 털털해 보이는 검은 개를, 짙은 밤색 신사복과 정장 구두의 주인은 온순해 보이는 밤색 개를 데리고 다니는 것이 관연 우연일까? 빨간 운동화를 신은 아가씨와 귀여운 흰 개를 연결하는 개 끈이 빨간색이라는 것은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날렵한 갈색 부츠를 신은 아가씨와 갈색 얼룩을 지닌 개의 우아한 표정은 또 얼마나 닮았는가?

 

   자신과 닮은꼴인 개를 데리고 산책하는 사람들. 개 끈을 꼬옥 움켜쥔 그 외로운 손들을 오래 바라본다.

 

 

글 출처 : 한 걸음씩 걸어서 거기 도착하려네(나희덕산문집, 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