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후의 햇살에 비춰보니 자동차에 난 수많은 스크래치가 더욱 선명하게 보였습니다.

   차를 산 지 이제 넉 달, 새 차에 이렇게 흠집이 많이 났는데도 그녀는 전혀 마음이 아프지 않습니다. 오히려 이 흠집을 만들어 주신 그분이, 그분의 따뜻한 마음이 못내 그립습니다.


   그녀가 차를 산 지 두 달도 채 되지 않았던 어느 날 눈이 펑펑 쏟아졌습니다. 그녀는 차를 세워두고 지하철을 타고 출근했었죠. 잠잠해졌던 눈은 저녁에 되자 다시 쏟아지기 시작했습니다. 단독주택에 사는 그녀는 집 앞길을 쓸기 위해 두터운 외투를 입고 장갑을 끼고 모자를 쓰고 대문 밖으로 나섰습니다.

   그때 그녀는 보았습니다. 이웃집 할아버지께서 눈길을 쓸어내는 뻣뻣한 빗자루로 그녀의 차에 쌓인 눈을 털어주고 있는 것을 말이죠.

   순간 그녀는 비명을 지를 뻔했습니다. 저 빗자루가 얼마나 많은 스크래치를 낼지 눈에 보였기 때문이었죠. 하지만 그녀는 그렇게 하지 않았습니다.

   늘 다른 집 대문 앞까지 쓸어주시고, 직접 기른 채소들을 나누어주시던 인자하신 할아버지. 그분은 오로지 이웃집 차에 눈이 쌓인 것을 대신 털어주는 일에 몰두하고 계셨으니까요.


   일어난 결과보다는 그 행동 뒤의 진심을 헤아려보는 것이 더 중요하다는 걸 그녀는 오랫동안 마음에 새겨왔습니다. 그 훈련이 바로 그 순간에 큰 도움이 되었죠. 그녀는 할아버지께 다가가서 감사 인사를 드렸습니다.

   “제 차를 이렇게 깨끗하게 해주셔서 내일 아침엔 편하게 출근할 수 있을 것 같아요.”

   인사드리자 할아버지는 환하게 웃으셨습니다.


   봄이 오기 직전에 이웃집 할아버지는 돌아가셨습니다. 빈소에는 그녀 차의 눈을 털어주시던 날처럼 웃고 계신 사진이 놓여 있었습니다. 할아버지께 국화꽃 한 송이를 바치면서 말했습니다.

  
할아버지.
저는 세상에서 하나밖에 없는 차를 타고 있어요.
할아버지의 마음이 새겨진 차를 타고 있거든요.
할아버지. 감사합니다. 편히 쉬세요.


글출처 : 저녁에 당신에게(김미라, 책읽은수요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