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 3주년 기념일.

   아내와 만나 저녁을 먹고, 깜짝 이벤트로 선물을 전하는 순서까지 무사히 마친 뒤 영화관으로 향했습니다. 비행기의 1등석 같은 편안한 의자에 와인까지 서비스를 해주는 영화관에서 아내와 영화를 보았습니다.

   영화는 멋진 목소리를 가진 남자의 내레이션으로 시작되었습니다. 그는 내레이션이 있는 영화를 좋아했습니다. 친절한 내레이션을 들으면 오해의 여지가 줄고, 무언가 놓치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불안함을 떨쳐버릴 수 있어서 좋았으니까요.

   오늘 그는 자신이 내레이션이 있는 영화를 좋아하는 이유를 보다 분명하게 알게 되었습니다. 결혼 생활 곳곳에 지뢰처럼 묻혀 있는 순간들, 예를 들자면 아내가 “내가 왜 화냈는지 알아?” 하고 물어보는 순간에 “당신의 아내는 지금 이런 이유로 화를 내는 것”이라고 친절하게 내레이션을 해주면 좋겠다고 자주 생각했었습니다. 혹은 이런 식의 내레이션을 기대했는지도 모릅니다. “세상의 모든 아내는 이걸 잘해주면 또 다른 걸로 트집 잡을 테니 그냥 맘 편히 생각하고 영혼 없는 사과로 대처하라.”

   내레이션에 관한 생각에 너무 골몰했던지 그는 영화를 보다 말고 잠이 들어버렸습니다. 무언가 서늘한 기운이 들어 눈을 떴을 때 그는 아내의 싸늘한 눈길과 마주쳤습니다. 선물도, 근사한 저녁도, 이 영화까지도 아무 소용없다는 듯한 싸늘한 눈빛, 어떻게 아내와 함께 영화를 보러 와서 잠들 수가 있느냐고 추궁하는 듯한 눈빛이 그를 내려다보고 있었습니다.

   불안하고 허탈한 마음으로 극장을 나서는 그의 휴대폰에 메시지 하나가 도착했습니다. 친절한 선배가 보낸 메시지에는 이런 글이 담겨져 있었습니다.
남자를 사랑하는 법 = 조금 사랑하고 많이 이해할 것!
여자를 사랑하는 법 = 많이 사랑하고 함부로 이해하려 들지 말 것!

   글출처 : 저녁에 당신에게(김미라, 책읽은수요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