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가슴 빈터에 네 침묵을 심는다
               詩. 김정란

네 망설임이
먼 강물소리처럼 건네왔다
네 참음도
네가 겸손하게
삶의 번잡함 쪽으로 돌아서서
모르는 체하는 그리움도

가을바람 불고
석양녘 천사들이 네 이마에
가만히 올려놓고 가는
투명한 오렌지빛 그림자도

그 그림자를 슬프게 고개 숙이고
뒤돌아서서 만져보는
네 쓸쓸한 뒷모습도

밤새
네 방 창가에 내 방 창가에
내리는, 내리는,
차갑고 투명한 비도

내가 내 가슴 빈터에
네 침묵을 심는다,
한번, 내 이름으로,

너는 늘 그렇게 내게 있다
세계의 끝에서 서성이는
아득히 미처 다 마치지 못한 말로

네게 시간을 줘야 한다고 나는
말하고 쓴다, 내 가슴 빈터에

세계가 기웃,
들여다보고 제 갈 길로 가는
작은, 후미진 구석

그곳에서 기다림을 완성하려고
지금, 여기에서, 네 망설임을,
침묵을, 거기에 심는다,
한번 더, 네 이름으로,

언제든 온전히 말을 거두리라
너의 이름으로,
네가 된 나의 이름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