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보름달보다 환한.....



 저리, 큰 달이 아니어도 
내 가슴엔 환한 달이 셋이나 있습니다.

흐르는 세월에 등이 시려도
이 달들이 있어 가슴은 늘, 따뜻합니다.

그 들이 옹알이 할 무렵에는
영악(獰惡)하지 말고 지혜(智慧)로운 이 되라고

걸음마 시작일 때는
어둡고 추한 곳은 아니 된다고

책가방 들고 다닐때 쯤에는
자신을 귀하게 사랑할줄 알며 

나와 친구, 이웃의 관계를 익히고 돈독(敦篤)히 하며
세상에 나아갈 많은 지혜로 채우라고

가슴 속에 늘, 여리고 어딘가 미흡하게만 보였는데
여태 품 안에서만이던 것들이, 이제 자라서.....

바다 건너에서 전화일 망정 
각기 출근을 한다며 인사를 보내오는 걸 담은 날에는  

이제 이런 인사는 
나 아닌 사람의 몫이여야는구나로 
품을 떠날 때가 머지 않았음을 느낍니다  

또, 이 애비와 같은 대열에서 
온전한 사회의 한 몫을 하는 구성원으로 같이 늙어 갈거라는 생각에 

대견함 보다도 
무언가 잃어버린 것 같은 허전함이 고여 옵니다

아들 하나에 딸 둘.......

그런데 
언제 부터인가 짝들을 만나, 이 품안에서 떠나려고들 한답니다

애비의 취학(就學) 때는 국민학교라 했었습니다.

시골의 외갓댁 
주름 고우신 외할머님이 주시는 샛노란 병아리 두 마리를 
품에 안고 온적이 있었습니다

그때의 어미 
지 새끼 갈려 나갈 때에, 이 보다 더한 아림을 삭혔겠지요? 

별스런 비유를 다 한다고요?

이러는가 봅니다 
아직은 아니지만..... 

내 새끼들이 갈려 나갈 때 덜 아프려고 
미리 덜어내려 이 글을 쓰는지도 모릅니다
 
아니, 사실임을 숨기지 않으렵니다

누군가에게 뺏기는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잃어 버리는 것도 아닌데도 
그냥, 이러합니다 

굳이 아니된다 막아 설, 그러한 일도 아닌데도
어쨋든, 다 자라서 품안을 떠난다는게 괜시리 싫습니다.

이게..... 
부모가 갖는 자식에 대한 맹목적인 욕심이란건가 봅니다

그러한 생각이 드는 요즘엔
더욱, 애들이 사랑스러워 

얼른 품안에 안지도 아니, 거꾸로 
내가 안기울 만큼 부피가 큰데도 

옛날로 돌아가 
매일 밤, 내 방에 자리 펴고 나란히 뉘어서, 기저귀도 갈아주며 
함께 데리고 자던 때로 돌아가고픈 마음, 굴뚝입니다

밤새 칭얼대며, 잠 못자게 한 그때가 그리워옵니다

생각해 보면 
남 달리 별스럽게 더한 사랑으로 키워 주지도 않은 것 같은데 말입니다

이 병아리들이 다 짝을 지어 나가 
지들 만의 행복하고 든든한 왕국을 이루고 살아 준다면야..... 

온 세상의 부모들 마음이겠지요

왕국이 아니어도
둘이서 같이 눈 감고 영원한 길 떠날 때 까지

서로
같은 크기와 무게로 둘 만이 오가는 문으로 지켜 내며 

기울어짐 없이 
이쁜 병아리도 서 넛 정도 낳아 키워냈으면 하는 간절함도 
욕심으로 더 부처 봅니다.

누가 그러하더군요

우리가 살았던 시대
열 사람이 나누어 지녔던 지식이라 뽐내던 것들 

지금은, 한 사람일 것도 없이
중학생 정도면 충분하고 
더 나은 양과 질의 고급정보 까지도 생산해 낸다고......

아이들은
이 애비가 보고 들은 지식이나 경험보다 

쉴새없이 쏟아지는 정보 홍수에서 낙오 안되도록
몸소 체험한 지혜가 더 많았으면 합니다

아이들에겐 늘, 
"세상을 살지 말고, 인생을 살아라"고 하여왔습니다

많은 차선(車線)이 있는 넓은 길 

똑같이 출발해도
목적지에 도착은, 누가 먼저라고 할 수 없음입니다

정지 신호에, 끼어들기에, 사소한 사고....
출발 전의 계획 그대로, 그 길을 달릴 수는 없는 것입니다 

자신이 가는 목적지가 불과의 거리지만
훨씬 먼 곳에서 오는 차가 먼저 도착해 있는 경우도 볼 수 있습니다

정지선에 멈추어 있다가
신호가 바뀌어 출발 기아 변속을 하는데

옆 차선에선
부레이크 한번 밟지도 아니하고, 정지 신호에도 걸리지도 않고 

논 스톱으로 
쏜살같이 앞질러 내 달리는 걸, 우리는 흔히 보게 됩니다 

우연히도 
진행 신호 만 연동(連動)으로인 경우인데도......

이것을 굳이 행운(幸運)이라 한다면
우리네 인생에도 그리고, 내 병아리들에게도 

이러한 행운이 있기를 바라는게 인지 상정이겠지요

핸들 잡고 있을 때에 이러한 일들을 보는 날이면, 어쩌면.....
이리도 우리가 사는 인생과 흡사한지요.....

하찮은, 별스럽지 않은 일에서도 
우리는, 인생을 배우기도 합니다

그렇습니다.
세상을 살아가는데는, 적지않은 장애(障碍)와 문제가 있습니다

세상(世上)을 사는 것과 
인생(人生)을 사는 것 

글 모양새 만 다르다 하실 것입니다
그렇지만 이 주책은, 분명히 다르다는 생각입니다

세상을 사는 것은 

자신과 관계있거나, 하고싶은 범위 안의 일들 만을 위해 사는 것 
경쟁에선, 반드시 이겨야 만 된다는 것 

이것이
세상을 사는 것이라 가르치는 지금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조상이 뉘신지는 몰라도, 아파트 열쇠 번호는 달달 외우고 다니는...... 
이 시대의 나, 너없는 대다수의 삶이기도 하구요

모두가 이리 산다면
잘들 살아야겠지요

모두가 자기 앞가림하면 고른 풍요 속에 행복이 골고루여야 하는데도 
현실은.....

그래서 굳이
인생을 살아야 한다고 

물림을 주고 싶은 속내가 여기에 있음 입니다

한 조각의 빵

보는 이에 따라 맛, 모양, 크기, 값어치, 심지어는 
자신의 품격까지도 얹어 생각을 하는 이가 많은 것 같습니다 

이러한 이에게는 
이 빵 한 조각이 있으면 좋고, 없어도 그만일 수도 있겠고

한 조각일 망정 
우선의 배고픔에 꼭 필요한 이도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같은 배고픔이어도
보다 절실한 이가 있을 것입니다

이러한 때에는 
절실하지 않는 한, 조금의 손해라는 생각이 들어도 
양보하는 마음의 여유를 갖는 삶을 살라고 하는겁니다

무슨 해괴(駭怪)한
논리답지 않은 어설픈, 귀한 남의 시간 도둑이냐 하실 이도 있겠지요

감수하고 계속하렵니다
마침
끼니를 걸른 때라, 내 몫이길 바라는 마음도 생기지요

허나
이러한 남을 위하는 마음이 얼마나 값진 것인지는

훗날, 그러한 것이 
얼마나 인생의 여유를 주는지는 오래지 않아 알게 될겁니다

크건 작건
그리 축적된  하나 하나가 맑은 지혜로 되어 

사는 동안에 만나는 난관들을 
얼마나 슬기롭게 헤쳐나가게 하는 힘이 되는지를......

혹시
잠 들기 전....

최근의 하찮은 배려에 
따뜻이 보내온 눈빛이 너무고와

아무도, 그 의미를 모르는 흐믓한 미소를 지으며 
잠들어 보신 적 있으시겠지요?

또, 이러한 일이 매일마다이면 얼마나 좋을까요?

이러한 사소한 것에서 부터 
인생의 참 맛을 느껴지는게 아닐까요?

자신에게 도움된다고
내 이익만을 위하여 남에게 해를 끼치는 일은 

남도 그 이상의 아픔을 자신에게, 아니면
후대(後代)에게 라도, 꼭

복리(複利)로 불어난 아픔으로 돌아옴이 
필연적(必然的)이라는 걸 
경계(警戒)하는 삶이었으면 하는 바램에서입니다 

자신 만을 위한 삶이 아닌 
언제나 더불어 함께라는 생각으로 살아가는 삶....

길 위에 떨어저 있는 금화 한 닢.

"내가 아니면 남이 가저간다, 먼저 보았으니 내가 가진다"
"나 보다도 꼭 필요한 이가 가저갔으면..."하는 생각의 차이는, 

극(極)과 극(極)이지요.

전자(前者)는 세상을 사는 것이고, 
후자(後者)는 인생을 사는 것이라 한다면
너무 주제 넘은 비약(飛躍) 일까요? 

남을 의식하지 않고
스스로 울어나는 양보(讓步)와 겸손謙遜)은 

누가 무어라 하여도 함께 살아가야 할 세상
누구나 품어야 할 
사람답게 사는 최고(最高)의 가치(價値)이자, 덕목(德目)이 아닌지.....

"그래, 잘 한거야, 마땅히 그래야지"라는 마음이 
다른 한쪽 마음에게
"왜 그랬느냐, 어리석게..."라고 질타(叱咤) 할 수 있는 결단인다면

늘, 미소가 머무는 삶이면 
언제 올지 모르는 일이지만, 생의 저 끝 자락에 가서는 

보람있는 인생, 후회없는 인생이었다고
스스로에게도, 그리고 아이들에게도 남아 주어

그 본을 대물림하리라 안도하며
평안한 미소의 이불을 덮고 떠날 수 있지 않을까요.....

늘 이러한 마음으로 인생을 살아라 
역지사지(易地思之)를 품으라는 걸 

애비의 혼수(婚需)? 이려 한다면
가난한 애비의 넋두리로 몰려, 가슴 속에 안 담으려 할까요?

아마, 그러하겠지요.....
현실의 비정함을 껶고 있을지도 모르니

허나, 에미 애비의 품안에서 
30년 가까이, 몸으로 부딫치며 보면서 느낀 바가 있어 왔기를 

나의 분신들이기에
새록 새록 배어 있기를, 믿어 의심치 않으려 하여집니다

당장은 아니어도, 너무 오래진 않게 
이 초라한 애비의 마음, 헤아려 주리라고요.....

내 병아리들
이 둥지에서, 머지않아 다 들 떠나겠지요.

그런데, 이 병아리들이
이 품에서 떠난다는 걸 슬퍼하지 않고 오히려 너무 기뻐들 하니...

그것도 괘씸하다 생각이 드는건 왜 일까요.....

그러한 생각을 하는, 이 주책은 
부모님 슬하를 떠날 때에

둥지에서 떠남을 슬퍼하며 낳아 키워 준 은혜에 감지덕지(感之德之) 
시늉이라도 드렸는가를 생각해 보면.......

아니었습니다. 
그러한 적 없었음인 것 같습니다.

그러한가 봅니다. 
부모와 자식의 관계란, 키우면 그것으로 만족해야 하나 봅니다

자신도, 남도 다치지 않으며 건강하게 
옳고 그름을 판별하는 능력과

능력에 맞는 교육으로 
하나의 사회인으로써 갖출 소양을 익히도록 울타리 노릇이다가

어느날
처음 빕겠습니다라는 인사 하나만으로, 기꺼이

그와 짝을 지워 떠나 보내는 것 까지가 몫인가 봅니다~
그러한가 봅니다

아들 하나에, 딸이 둘이고 보면
우선은 밑지는 장사라 이것 또한, 마음이 얹잖습니다

아들 만 열이었으면, 며늘 아가도 열을 들일 터인데......
꿈도 야무지다...고요?

예 부터 선현(先賢)들은 
한 가문(家門)을 일으키는 것도, 기울게 하는 것도 

모두
"며늘아기 들임에 있다" 하였습니다

그렇습니다
나쁘다는 것과 괜찮은 것, 그리고 좋은 것을 가리는 것은
자라면서 터득하는 것이지요

6.25 때 피난와서 정착한 어느 유명인사와 동석한 술자리에서
실로, 충격을 받았던 일이 떠올라 우울합니다

몸에 지닌 패물 하나라도 있었으면
지금 기둥에 묶여서 총살을 당하려는 부모 형제를 구할 수 있었을탠데.....

평생을, 재물을 모으는데만 목숨을 걸었답니다
허나, 재물만이 전부는 아니었습니다

그러는 사이에 돌보지 않고 자란 슬하의 2녀 1남은
지금, 모두 이혼하고 

제각기, 혼자서 외국으로 떠나 살며 
소식이 끊긴지 오래답니다

성장과정에는, 하층에서 상층까지를 살게되었지만
물론, 제짝들도 내노라하는 집안과 사돈을 맺어 결혼들을 하였지만

10년이 안되어서 모두가 불행하게 된 이유는
겸손과 배려와 노동의 가치를 몰랐었기에라 합니다

어느 누가
상전(上典) 행세를 하는 며느리를, 사위를 이쁘다 하겠는지요.....

경제적 관점에서만 가족과 사물을 대하는 것 밖에 모르니
당사자인들 얼마나 힘이 들었겠는지요.....

거창하게 
윤리와 도덕은 차치(且置)하고라도

최소한 가족간에는 
사랑하는 법, 그 하나만이라도 가슴에 넣어 주었더라면 하는
또다른 부모가 된 노인의 눈물을 보았습니다
 
그것을 아니 가르친게 
그렇게 후회될 수가 없다 하였습니다

회한(悔恨).....
이성간의 애정에서 비롯된 것이 아닌, 부모와 자식간의 회한이라면......

어느덧 가슴은, 나도 모르게 고인 눈물로 출렁이고 있었습니다
어렵게 작별을 나누고 2Km 귀가 길을 걸어서 왔습니다

동정 보다도
남의 일 같지 않은 아픔이 가슴에 박혀 우울히 귀가하여 보니
높이 떠있는 훤한 달이, 나의 병아리들로 보였습니다

훤한 달 위로 오버랩되는, 좀 전의 노인.....
아니, 어느 노인의 눈물이 가슴 속을 돌아다녔습니다

자식에 대한 일은, 그 누구도 장담을 못한다지요

단지.....
잘 되길 바라는 마음 일뿐.....

취기(醉氣)도 취기지만, 갑자기
병아리들에 대한 글을 쓰고 싶었습니다

그러느라 밝힌 새벽은
저린 발부터 따스하여 왔습니다

새삼스레 주제넘은 너스레였군요

보통의 삶이어도
가진 입장일수록, 강한 입장일수록 

상대편 입장에 서서 한번은, 꼭 
생각을 깊이 한 다음에, 실행을 하여야 하고

또 그것이 상대편의 막다른 길이라는 걸, 안다면
모면할 길은 터주어야 한다는 깨우침

딸들 만이 아니라, 아들까지도.....
그 의미가 주는 무게 깨우치도록, 품성(品性)에다 넣어 왔지만 

그러한 마음으로 
상식(常識)이게 살도록 가르치기는 하여 왔지만.....

그 슬기가 어떠한지는 
두고 두고, 오래 지켜 볼 밖에요....

그 중에도 딸들은 모두가 
한 가문의 성쇠(盛衰)를 책임하여야 하고, 가능하면 그들의 후손으로 부터

어느 대의 어느 할머니는
우리가문을 일으켜 세우고, 이웃과 더불어 나누며 살으신 분이라고

제삿날, 큰잔에 따르는 곡주가 
한방울도 흘리지 않는 정성(精誠)과 흠모(欽慕)로 모신다는 애기

내 제삿날, 내 후손이 축문(祝文)으로 고하여 오기를 바란다면
언감생심(焉敢生心)일런지.....

부디, 그러하여지기를 빌고 싶은 마음
딸을 가진 부모 모두의 마음이겠습니다

미욱한 애들에게, 
"세상이 아닌, 인생을 살아라" 가르첬다 하였는데, 

이 글을 읽은 이들 중에 사돈 맺을 인연은 없겠지만.....? 
그래도 노파심(老婆心)이 생김은 어쩔 수가 없군요~

애비의 기대에 
어긋난 적이 없이 자라 온 품성(品性)에 

애비의 
이 조바심되는 마음까지 보태어 부디 비는 마음, 더 붙여 봅니다

영원히 
애비의 가슴을 환히 비추어다오

사랑하는 나의 병아리들아......


甲申 六月 中伏, 열나흘 달 보며 ....邨夫  Ador.   


      * 화면 위에서, 마우스 가운데 도르래를 굴리시거나, 우측 기둥에 있는 막대를 오르내리시는 수고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