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기와 연지의 역사

   달기는 소씨(蘇氏)의 딸이며, 상(商)나라 주왕(紂王) 자신(子辛)의 총비(寵妃)였다.
   소(蘇)나라는 오늘날의 하북성(河北省) 제원현(濟源縣)이다.
상나라 왕 자신(子辛)은 상나라 최후의 왕이다. 그는 어려서부터 총명하고, 말을 잘 했으며,
왕이 된 후에는 대외적으로 많은 전쟁을 일으켰고, 나라 안으로는 잔혹한 압제 정치를 하였다.
뿐만 아니라 사치와 음탕한 것을 즐겼으며, 처첩들이 가득하였음에도,
미녀들을 찾아오도록 시켰다.
   당시 소(蘇)나라는 주왕(紂王)에게 불만을 품고 있었는데,
이를 이유로 주왕은 소나라를 토벌하라는 명령을 내렸다.
하지만 국력이 약한 소나라는 하는 수 없이 소나라 미인 달기를 주왕에게 바쳤다.  
주왕은 은행알과 같은 눈에 복숭아 같은 뺨, 하얀 피부의 미인인 달기에 빠졌다.
주왕은 하루종일 달기를 끼고 술을 마시고 노래를 하며 즐기기만을 일삼았다.
   그 당시 달기는 도화장(桃花妝)이라는 화장을 하였는데,
이것은 여러 가지 꽃잎을 짜서 그 액을 얼굴에 바르는 화장법,
즉 지금은 연지(燕脂)라고 하는 것이었다. 여인들이 사용하는 연지의 역사는
대략 달기가 도화장(桃花妝)을 했던 이 때부터 시작된다고 할 수 있다.
   주왕은 달기의 환심을 사기 위하여, 도읍의 남쪽에 길리 3리, 높이 1000척의
녹대(鹿台)와 적성루(摘星樓)를 지었다. 이 높은 곳에서 달기는 사람들의
비명 소리를 들으면 웃음을 터뜨렸다. 포학한 주왕 역시 달기의 웃음을 보기 위하여
잔악한 일을 서슴치않았다. 예를 들면, 활로 사람을 쏘기,
호랑이에게 사람을 잡아먹게 하는 것, 산채로 사람의 가슴을 가르는 일,
구리기둥에 기름을 발라 숯불 위에 걸쳐 놓고 죄인으로 하여금
그 위를 걷게 하여 미끄러져서 타 죽게 하는 포락(烙)의 형을 구경하면서 웃고 즐겼다.
또한 주왕은 상(商)나라의 마지막 군주인 주왕(紂王)은 본시 지혜와 용기를 겸비한
현명한 임금이었으나, 달기(달己)라는 요부에 빠져 그만 극악무도한 폭군이 되고 말았다.
그는 잔혹한 형벌을 고안해 내어 자신을 반대하는 관리나 백성들을 불에 태워 죽이면서,
여기에서 쾌락을 느꼈다.  
   이것으로도 부족했던 주왕은 술로 연못을 만들고 고깃덩이를 걸어 숲을 이루게
(以酒爲池, 懸肉爲林)한 다음, 많은 젊은 남녀들로 하여금 발가벗고 서로 희롱하고,
음탕한 음악과 음란한 춤을 추게 하며, 자신도 먹고 마시면서
이러한 광란의 잔치를 감상하였다. 이른바 [酒池肉林]의 주인공이 바로 이들이다.
   주왕의 음탕하고 잔혹한 정치는 왕공대신(王公大臣)들의 불만을 불러일으켰다.
하지만 그들은 감히 밖으로 드러내지 못하였다. 기원전 1039년, 주(周)나라
무왕(武王)은 친히 대군(大軍)을 이끌고 주왕(紂王)을 토벌하였다.
당시 주왕(紂王)의 군대는 동이(東夷)와 작전을 펼치고 있었으므로,
주왕은 노예들을 데리고 전투에 임할 수 밖에 없었다.
그러나 노예들은 주왕의 명령을듣지 않고 주나라 무왕의 편에 섰다.
대세를 판단한 무왕은 모든 것을 포기하고 녹대에 올라가 스스로 몸에 불을 붙여 죽었다.
달기도 그를 따라  목을 메어 자살하였다.
   일부에서는 주(周)나라의 무왕(武王)이 주왕을 토벌하였을 때
달기도 같이 살해되었다고 하기도 한다. 어쨌든 달기가 실재 인물인지 아닌지는 확실하지 않으나,
주나라 유왕(幽王)의 애비(愛妃)인 포사(褒)와 함께 중국 역사상
음란하고 잔인한 대표적인 독부(毒婦)로 되어 있다.(펌:야한카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