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였구나
나무 뒤에 숨어 있던 것이
인기척에 부스럭거려서 여우처럼 나를 놀라게 하는 것이
슬픔, 너였구나
나는 이 길을 조용히 지나 가려 했었다.
날이 저물기 전에
서둘러 이 겨울 숲을 떠나려고  했었다.
그런데 그만 너를 깨우고 말았구나
내가 탄 말도 놀라서 사방을 두리번거린다.
숲 사이 작은 강물도 울음을 죽이고
잎들은 낮은 곳으로 모인다
여기 많은 것들이 변했지만 또
하나도 변하지 않은 것이 있다.
한 때 이 곳에 울려 퍼지던 메아리의 주인들은
지금 어디에 있는가
나무들 사이를 오가는 흰 새의 날개들 같던
그 눈부심은
박수치며 날아 오르던그 세월들은
너였구나
이 길 처음부터 나를 따라 오던 것이
서리 묻은 나뭇가지를 흔들어
까마귀처럼 놀라게 하는 것이
너였구나
나는 그냥 지나 가려 했었다
서둘러 말을 타고 이 겨울 숲과 작별하려 했었다.
그런데 그만 너에게 들키고 말았구나
슬픔, 너였구나               ===== 류시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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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내 마음을 가장 잘 표현 해준 시이다.
슬픔, 너였구나......  뭔지 모를 진한 감동이 가슴 밑바닥에서 부터 치고 올라 오고 있다.
아! 슬픔,너였구나....  이렇게 비가 내리고 있는 밤이면... 내 마음속에 비가.
이유없는 슬픔이 딱히 꼬집어 표현 할 수 없는 언어의 부족함까지도 나를 매우 슬프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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