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ifference is Beautiful - Ⅲ
    
    인간의 성격 선호도에 지대한 영향을 미치는 것은 
    어떻게 외부의 사물을 어떤 사고로 인식하느냐에 따라 달라지는 것이다. 
    이 같은 기능을 융은 정보수집 기능으로 감각형과 직관형으로 명명하여 나누고 있다. 
    
    감각형의 사람은 사물을 오감으로 받아들이고, 현재에 촛점을 맞추어 생각하며
    직관형의 사람은 사물을 육감으로 받아들이고, 현재보다는 미래에 촛점을 맞추는 사람들이라고 본다.
    
    예를 들어 설명하자면 감각형의 사람은 나무는 보되 숲을 못 보고, 
    직관형의 사람은 숲은 보되 나무를 못 보는 사람들이라고 설명하고 있다. 
    따라서 감각적인 사람은 현재에 촛점을 맞추기에 매우 현실적이고, 실질적인 생각을 하며
    직관적인 사람은 현재보다도 미래나 의미에 촛점을 맞추기에 추상적이고 이론적인 생각을 하게 된다.
    
    만약에 이 두가지 형태의 성격인 사람이 
    경주 석굴암에서 떠오르는 아침 해를 바라보게 된다면
    감각적인 사람은 아침 해가 몇 시에 떠오르고, 주위 환경에는 무엇이 있고, 
    무슨 나무가 있으며, 그곳에 도달하기 위해서는 몇 번의 버스를 타야 하고, 
    그 당시에 함께 간 사람이 누구인지에 대한 구체적인 정보를 입수하게 되며 
    
    그 반면 직관적인 사람은 
    어떻게 하면 이같이 아름다운 경치를 이용하여 외화획득을 할 수 있을까, 
    또는 앞으로 어떻게 하여야 많은 사람들이 쉽게 오고 갈 수 있으며, 
    어떤 식으로 홍보를 하면 유익하게 될까를 생각하게 된다고 한다. 
    이같은 정보수집 기능은 다분히 선천적인 성격이기에 
    왜 그렇게 밖에는 생각하지 못하느냐고 상대의 생각을 비판할 수는 없는 것이다.
    
    이해를 돕기 위해 인물로 설명을 하면 
    감각형의 대표적 인물은 에디슨과 같은 사람이고, 
    직관형의 대표적인 인물은 아인슈타인과 같은 사람이라고 한다. 
    
    에디슨은 현실적이고 실용적인 정보수집 기능의 성격을 갖은 사람으로 
    우리 인간 사회에 꼭 필요한 물품을 계속하여 발명하였다. 
    이 사람의 영향으로 우리의 삶이 편리해졌음을 모두가 부정하지 않는다. 
    우리는 이 사회에 에디슨과 같은 인물이 없어서는 안된다는 것을 모두가 인정하는 것이다. 
    
    반대로 아인슈타인의 경우로 예를 들어보면
    하루는 아인슈타인이 강의를 부탁 받고 기차를 타고 여행을 하게 되었다고 한다. 
    기차에 앉아서 수많은 공상을 하던 중 차장이 차표 검사를 하게 되었을 때
    차표를 찾기 위해 앞주머니로부터 시작하여 뒷주머니 그리고 안주머니를 뒤지기 시작하였다. 
    아무리 찾아도 차표는 보이지 않았다. 
    당황한 얼굴로 차장의 얼굴을 쳐다보는 순간 차장이 아인슈타인을 알아보고 
    "박사님, 괜찮습니다. 그대로 자리에 앉아 계십시오" 라고 말했다고 한다. 
    그래도 아인슈타인은 차표를 찾기 위해 주머니를 계속해서 뒤지고 있었던 것이다. 
    그래서 차장이 "박사님, 괜찮습니다." 라고 다시 한 번 더 애원하듯 말했을 때, 
    아인슈타인은 빙그레 웃으며 하는 말이 
    "내가 차표를 찾는 것은 차표를 찾지 못하면 내가 어디서 내려야 할지 모르기에 찾는 중일세.." 
    라고 말했다고 한다.
    
    이처럼 현실에 충실한 에디슨과 
    미래의 이론과 개념에 열중한 아인슈타인과 같은 사람은 
    우리 사회에 모두 꼭 필요한 사람들이다. 
    만약에 에디슨이나 아인슈타인 중 누구 한 사람이라도 이 세상에 없었다면 
    우리의 삶에는 커다란 손실이었으리라 생각한다. 
    이같이 훌륭한 사람들일지라도 자기만의 생각과 판단으로 
    서로에게 이상한 성격의 소유자라며 비판을 했다면 
    에디슨은 아인슈타인을 보고, 
    뜬구름 잡는 소리만 하는 늙은이라고 욕을 했을런지 모를 일이며 
    아인슈타인 또한 에디슨과 같은 사람에게 
    먹고 마시고 편안함만 찾는 인생이라며
    그와 같은 삶은 동물들도 하고 있지 않느냐고 비웃었을지도 모를 일이다.
    
    이처럼 성격의 차이는 우리 주변 인간관계의 삶에서도 
    얼마든지 비일비재(非一非再)하게 볼 수 있는 일이다. 
    나와는 다른 사고방식을 소유했다고 해서 무조건 배척하기 보다는
    이러한 성격 차이가 내 사고 안에 좁고 편협한 생각과 시야들을 
    보다 객관적이고 포괄적인 긍정의 눈으로 바꾸어 줄 수 있다고 
    상대방의 사고를 먼저 수용하려는 내 마음의 자세를 갖추게 된다면
    나와는 다른 사고를 갖은 성격의 차이라는 것은 
    우리를 가르치는 훌륭한 스승이 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