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월의 숲/심재휘

가을이 깊어지자 해는 남쪽 길로 돌아가고
북쪽 창문으로는 참나무 숲이 집과 가까워졌다
검은 새들이 집 근처에서 우는 풍경보다
약속으로 가득한 먼 후일이 오히려 불길하였다


날씨는 추워지지만 아직도 지겨운 꿈들을 매달고 있는
담장 밖의 오래된 감나무에게 작별인사를 한다
이제 나는
숲이 보여주는 촘촘한 간격으로 걸어 갈 뿐이다

여러 참나무들의 군락을 가로 질러 갈 때
옛 사람 생각이 났다, 나무들은 무엇인가를 보여주려고
자꾸 몸을 뒤지고는 하였지만
그들이 할 수 있는 것은 길죽하거나
둥근 낙엽들의 기억에 관한 것 밖에는 없다

나는 내가 아는 풀꽃들을 떠 올린다
천천히 외워보는 지난 여름의 그 이름들은
그러나 피어서 아름다운 순간들에만 해당한다

가끔 두고 온 집을 돌아 보기도 하지만
한 때의 정처들 어느덧 숲이 되어가는 폐가들
일찍 찾아 온 저녁의 기운에 낙엽 하나가
잔 햇살을 보여주기도 감추기도 하며 떨어진다

사람들은 그 규칙을 궁금해 하지만 지금은
낙하의 유연함을 관람하기로 하는 때

그리하여 나는 끝없이 갈라진
나뭇가지의 몸들을 만지며
내가 걸어가는 11월의 숲이
가장 아름답다고 생각할 뿐이다